작성일 : 16-12-2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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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넓을홍
 조회 :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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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피니즘의 이념과 가치지향 (2).hwp (42.5K) [2] DATE : 2016-12-21 14:1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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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산악부의 정신과 무한혁신
⃟ 우리에게 알피니즘이란, 그 올바른 이해
∎ 알피니즘의 이념과 가치지향 (1)
∎ 알피니즘의 이념과 가치지향 (2)
∎ 알피니즘과 생명존중사상
∎ 알피니즘과 자연환경보호
⃟⃟ 우리시대 알피니즘과 대학산악부
⃟ 이 글을 남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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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피니즘 의 이념과 가치지향(2) ((洪))
알피니즘에서 산이란 인간의 육체가 물리적 활동을 하며 정신을 수양하는 도장(道場)이다. 이점은 수기치심(修己治心)의 유교(儒敎)정신을 근본이념으로 삼는 성균관이 그 도장인 것과 상통한다고 하겠다. 산이라는 자연을 불확실성과 극복의 대상으로 하는 ‘순수한 오름 짓'의 추구는 ’무상(無償)의 행위‘인 한편으로 또 하나의 큰 가치지향은 등정(登頂)이 아닌 '등정(登程)의 추구'라는 것이다.
등산 행로의 종점인 정상에 오름보다는 육체에 의한 ‘오름 짓의 과정’을 통해서 얻는 완숙한 깨달음의 정신에 그 의의와 가치를 두고 있다. 이 같은 가치지향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이른바 머메리즘으로서 "More Difficult Variation Route"이다. 머메리즘에 대한 언급 없이 알피니즘의 진화를 말할 수는 없다. 알피니즘의 본질적인 이념을 더 높은 단계로 진화시킴에 가장 크게 작용해온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머메리즘이다.
알버트 머메리(Albert Frederick Mummery, 1855~1895)1)는 한 개의 부사(More)와 한 개의 형용사(Difficult)로 수식된 복합명사(Variation Route)로서 오름 짓은 그 과정이 중요함을 말하였다. 머메리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등반로(Route) 뿐아니라 "더욱 어렵고 다양한" 오름 짓의 과정들이 등장하여 왔다. 알피니즘이 발원한 유럽 알프스에서의 Guideless, 히말라야에서의 Sherpaless, None Oxigen, 동계등반, 최소의 대원 · 장비 · 식량 · 경비·등반일수, Alpine Style, 나 홀로 등반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조합하여 “더욱 어렵고 다양한” 불확실성의 설정을 질적으로 키우기도 하였다. 이 같이 오름 짓의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불확실성, More Difficult Variation Route는 후대의 알피니스트들에 의해 개념의 진화가 이루어져 왔다. 단지 네 개의 단어로 표현되는 머메리즘은 현대 알피니즘이 추구하는 이념체계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알피니즘은 ‘산에서 머메리즘을 추구함이다“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2)는 1986년 로체 산(8,511m)을 오름으로써 인류 최초로 8,000m 급의 산 14좌를 모두 등정하는 대업을 이룬다. 그런 그가 "등산행위의 평가는 등반한 산의 높이, 등정의 유무, 등정한 산의 숫자가 아니라 등산 행위자가 극복한 불확실성과 어려움의 정도에 있다"고 말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그는 이 같은 등산철학을 바탕으로 무산소 등반, 단독등반의 원칙을 지향하고 있다. 그렇다. 산은 정복이라는 저급한 말로 표현하는 대상이 아니다. 등산은 오름 짓이 가지는 자연과의 순결한 교감이다. 앞에서 등산은 '무상(無償)의 행위'로 결과에 대한 상(賞)을 받기 위함도 아니며 결과가 아닌 행위 과정의 가치지향이라는 점에서 스포츠와 분명히 다른 차이가 있음을 말했다.
1988년 2월, 올림픽위원회(IOC)는 제 15회 캘거리 동계올림픽대회에서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에게 올림픽 은메달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은메달 수여에 대해 메스너는 등산은 스포츠가 아님을 분명히 하며 수상(受賞)을 거절하였다. 의식이 있는 산악인이라면 어디 메스너만 그리 하였겠는가?
이 사건은 등산을 스포츠로서 인식하려는 세인(世人)들에 대하여 알피니즘(Alpinism)이란 대가(對價)나 보상(補償)뿐 아니라 상(賞)을 받기 위함과는 무관한 숭고한 영역임을 명백히 보여 주었다. 아울러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지켜준 일이었다. 왜 하필이면 은메달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메달의 색깔이 중요한 것도 아니며 그것이 금메달 몇 개를 주는 것이라 할지라도 메스너의 수상 거절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제안이 산악계의 입장에서는 가소롭고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일 뿐이다.
스포츠는 타인과의 경쟁이다. 스포츠란 객관화된 규칙과 경기방식, 즉 동등한 조건에서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경쟁하여 승패와 순위를 겨루는 육체활동이다. 따라서 스포츠 정신은 두 가지로 요약되는 바, 규정된 룰을 지키는 것이 그 하나이며 자주 등장하는 수식어는 ‘정정당당(正正堂堂)’이다. 다른 하나는 승패에 대해 승복하고 순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승자에게 주는 시상(施賞), 패배의 인정과 순위에 따른 시상을 받아 들여야 한다.
이에 반해 등산은 스포츠와 같은 물리적 육체활동이 수반됨에도 타인과의 경쟁을 하지 않는다. 규칙이나 경기방식, 동등한 조건의 경쟁 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만들기도 어렵거니와 만들 수도 없다. 그런 것을 만들어 적용한다면 그것은 이미 등산이 아니다.
등산은 본질적으로 타 행위자와의 경쟁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활동의 장(場)은 산이기 때문이다. 등산 활동의 상대는 자연이며 한편으로 자신 스스로이다. 스포츠에서와 같은 심판은 없으며 관중 또한 없다. 심판이 필요하다면 그 역시 자신이 하면 되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가 올림픽위원회(IOC)의 메달수여를 거부할 때 똑 같은 제안을 받아들인 등산가가 있다. 폴란드의 예지 쿠쿠츠카이다. 그는 8,000m 급의 산 14좌의 최초 완등을 놓고 메스너와 경쟁을 하였었다. 메스너 보다 몇 개월 늦게 완등하였다. 1987년 사상 두 번째로 14좌를 모두 등정한 산악인이 되었다.
폴란드의 예지 쿠쿠츠카3)는 자신의 저서 '14번째 하늘'에서 "등산이 산을 정복하라고 돈과 메달을 주고 포상을 하는 스포츠라고 하면 그 같은 영광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끌어 모을 것이다. 그러나 히말라야와 알프스 그리고 안데스의 거봉에서 자신과 싸우려고 결심한 사람들의 행동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라고 함으로써 그 또한 등산이 재물과 무관한 무상(無償)의 행위이며, 경쟁의 산물인 메달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그가 올림픽위원회의 메달을 받은 것에 대해서 “위원회가 주는 메달은 경기결과에 따른 메달수여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짧게 말했다.
당시까지는 인류 등반사에 14좌 완등이 단 둘뿐이라는 위상을 가진 메스너와 쿠쿠츠카, 그 두 사람이 외관상으로는 메달 수상거부와 수상을 받아들이는 상반된 입장을 가진 것처럼 보여 질수 있다. 수상에 관한 외형적인 입장과는 달리 그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스포츠에 대하여 등산이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분명하게 합치(合致)하고 있다. 등산은 스포츠와 다르다는 것이다.
그 요체는 등산은 무상(無償)의 행위이며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산을 오르는 목적이 '오르는 행위, 오름 짓' 그 자체라고 하면 등산으로 얻는 깨달음과 즐거움 그 이외의 다른 부수적 대가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등산은 육체적 운동이라는 점에서 스포츠적인 요소가 있으나 자연의 곤란을 극복하는 모험의 요소가 내재(內在)되어야 개념의 완성을 가진다. 불확실성에 맞서서 얻는 깨달음에 대해 객관적, 상대적 평가를 할 수 없다는 점이 스포츠로 해석할 수 없는 지고지순(至高至純)한 독자영역이다.
다만 제한된 공간의 암벽과 빙벽에서 스포츠의 방식을 빌려 경기나 대회를 하기도 한다. 과거시대의 산악인들이 행사로써 ‘오리엔티어링(Orienteering)’이나 경보대회 같은 것을 하기도 했다. 이것은 등산을 발전시키기 위한 보조적 훈련 수단이거나 친목을 도모함이 목적이다. 엄밀히 말해서 그 같은 행사가 등산행위는 아닌 것이다. 요즈음은 실내와 야외의 인공암장을 오르며 훈련하거나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서 활동대상이기도 하다. 이 경우에도 ‘스포츠 클라이밍’으로 한정되며 등산의 고유 영역은 분명 아닌 것이다.
한편 스포츠의 순수한 ‘아마추어리즘(Amatuerism)’에서는 스포츠의 활동을 직업으로 하거나 대가(對價)를 취할 수 없다. 스포츠를 직업으로 하고 대가를 취하고자 한다면 별도로 프로의 장(場)이 마련되어 있다. 이 같은 점에서 등산이 추구하는 ‘무상(無償)의 행위’는 스포츠의 ‘아마추어리즘’과 동질(同質)로 상통한다 할 것이다. 스포츠에서 최고 활동의 장은 올림픽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 경쟁과 승패의 결과는 순위로 매기며 그 포상은 금, 은, 동으로 시상(施賞)을 한다.
유럽 알프스 산맥에서 활동과 이념의 성숙을 가진 알피니즘은 오늘날 지구의 지붕이라는 아시아, 인도에 걸친 히말라야 산맥이 최고 활동의 장이다. 히말라야를 위시한 각 대륙의 고산에서 행하는 최고 난이도의 등산행위에서도 대가나 보상은 당연히 있을 수 없다. 아울러 고산에서 상업등반을 하는 사람들의 등산행위 또한 셰르파나 고산포터와 마찬가지로 알피니즘에 의한 오름 짓 아닌 등산을 돕는 행위일 뿐이다.
이것이 알피니즘이며 정통한 산사람, 알피니스트들의 주의 주창(主義 主唱)이다. 주의 주창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알피니즘의 이념이며 본질이다. 단적으로 등산의 행위는 행위자가 얻는 깨달음과 즐거움의 향유이며 그 외에는 무상(無賞)이며 무상(無償)이다. 이에 반해 스포츠의 성과는 유상(有賞)이며 프로에서는 유상(有償)으로 등산과는 이질적(異質的)인 요소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알피니즘의 가치지향이 메스너나 쿠쿠츠카와 같은 전위 등산가, 그 정도는 아니라도 소위 전문 산악인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어떤 이는 등산은 넘어서야 할 크고 작은 난이도를 가진 모험 요소가 내재해 있어 위험한 행위철학이라고 말하는 무지를 보인다. 알피니즘의 태동 이래 일반인 뿐 아니라 철학자들도 종종 그 오름 짓의 깨달음을 폄하하는 일이 있었다. 그 같은 냉소에 대해 냉소로 화답하는 말 중의 하나가 “Because they are there"이다.
이상에서 나는 알피니즘이란 순수한 오름 짓, 무상의 행위, 등반과정의 불확실성의 극복, 독자적 이념영역임을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들 못지않게, 아니 보다 중요한 불확실성에 대한 자아를 말하고자 한다. 전위등산가이든 나 자신이든 오름 짓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맞서 싸우는 불확실성 즉 모험의 요소와 곤란 극복
, 능력 한계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 불확실성의 기준을 설정함은 절대적으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알피니즘에서 극복의 기준이 개인으로 부터 산악부, 등반대라는 조직으로 옮겨가도 이념의 적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알피니즘의 오름 짓에서 개인과 단체, 국가를 대표하는 팀일지라도 각각의 능력한계를 기준으로 알피니즘을 실현하는 것이다. 즉 엄 아무개는 히말라야에서, 나는 둘레 길에서 또 등산 선진국은 로체남벽을 무산소 등반으로, 어느 나라 실버 등반대는 임자체를 등반함과 같이 각 개인, 각 팀이 스스로 설정한 불확실성을 넘기 위해 알피니즘을 실현하는 것이다.
누구의 오름 짓, 어느 팀의 등산이 더 가치 있느냐를 묻는 것은 알피니즘의 본질에서 보면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산에서 나의 오름 짓, 내가 속한 등반대의 오름 짓을 함에 있어 다른 등산가, 다른 등반대와 경쟁하는 행위란 무가치, 무의미한 일이다. 그래서 운동경기가 아닌 알피니즘에서 영욕은 부질없는 일이다.
알피니즘(Alpinism)의 등산, 산에서 '오름 짓'을 위한 그 오름 짓의 추구는 불확실성을 넘어서 깨달음을 찾고자 하는 숭고한 이념 영역이다.
산, 그곳이 고금동서(古今東西)를 막론하고 신들의 거처(居處)로 여겨졌던 것처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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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프레드 프레드릭 머메리(Albert Frederic Mummery, 1855 ~1895)이다.
1855년 잉글랜드 캔트주의 도버 출생. 16세 등산을 시작 타고난 반항아이며 모험가. '머메리즘'의 창시자. '머메리즘(mummerysm)': '등정주의(peak hunting)'를 버리고 "보다 어렵고 다양한 루트(More Difficult Variation Route)로 산을 오르라고 하는 '등로주의'. 이를 주창함으로써 알피니즘을 발전시킴. 1879년 마터호른의 쯔무트 능 초등, 1880년 마터호른의 푸르겐 능, 꼴 디 리옹, 에귀 데 그랑샤르모, 1881년 에귀 디 그레뽕, 에귀 베르뜨 남서면, 1887년 토이펠스그라트 등을 연달아 초등하며 유명 암벽등반가가 됨.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영국초판, 1895)는 그가 남긴 유일한 산악문학저서이다.
2)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 1944년 9월 17일 ~ )
이탈리아의 남부 티롤 소도시 브리센 태생. 히말라야 산맥의 8000미터 급 산 14좌를 최초로 모두 등정하였다. 1970년 낭가파르바트 등정을 시작으로 1986년 로체를 마지막으로 등정했다. 특히 에베레스트 산을 최초로 단독으로 무산소 등정하였다. 등반 경험을 바탕으로 20권의 저술을 남겨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산악문학상을 3번이나 수상했다. (출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3) 예지 쿠쿠츠카(Jerzy Kukuczka, 1948. 3. 24 ~ 1989. 10. 24)
폴란드 카토비체 태생. 히말라야 8000 미터 급 14좌를 사상 두 번째로 완등하였다. 1979년 로체 무산소 등정을 시작으로 1987년 시샤팡마를 끝으로 완등을 이룬다. 네 개의 동계 초등정, 다섯 개의 신 루트 등정 기록을 갖고 있다. 1989년 로체 남벽 등반 중 로프가 끊어져 추락사하였다. 라인홀트 메스너와 14좌 완등 각축을 벌이다가 몇 개월 늦게 이룬다. 메스너가 16년이 걸렸으나 그는 8년 만에 이룬다. 성공률 90%, 동계 초등정 4회, 신루트 등정 10회 그리고 대부분 단독등반이나 알파인 스타일로 등반했다. 겨울 등반의 대가로 폴란드 천재 산악인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출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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