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12-18 21:26
알피니즘의 이념과 가치지향 (1)
 글쓴이 : 넓을홍
조회 : 2,031  
   알피니즘의 이념과 가치지향 (1).hwp (47.5K) [2] DATE : 2016-12-18 22:08:25
∎남기고픈 이야기 3
 몇 통의 OB 전화를 받았습니다. 관심과 적지 아니 공감을 가지신다니 나로서는 다행이라 여깁니다.
 남기려는 글 쓰는 계기가 어찌됐든 가슴에는 답답함, 머릿속에는 남겨야 할 말들로 가득해 주말 짬짬이 내는 시간으로 내 할 말을 서둘러 다 풀어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OB님 한분은 마침 2016 엑셀시오에 우리나라 대학산악부의 외국인 유학생 들을 인터뷰한 기사가 실렸으니 다루는 글에 참고하라고 12 페이지 분량을 FX로 보내주셨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읽어 보았습니다.  동서양 외국인유학생이 수도권 각 대학산악부에서의 등산활동과 산악부 조직문화에 관한 내용입니다. 인터뷰 내용에 단 한마디도 알피니즘이란 말이 나오지 않았으나 그들이 말하는 것은 한국 대학산악부에서 알피니즘의 등산활동을 향유하고 있다는 것이며 한국 대학산악부 조직문화의 장점을 말하는 것이 주류입니다. 읽어들 보십시오. 보내주신 뜻에 부합하여 '우리시대 알피니즘과 대학산악부'를 말할 때 구체적으로 다루겠습니다.

 지난해 나는 '한국문인연수원' 요청에 따라 저명문인들을 대상으로 몇 차례 특강을 가졌습니다. 그때 중수필 형식으로 쓴 강의 자료, ‘알피니즘 의 이념과 가치지향  (1), (2)’를 몇 글자 고쳐서 SKKAC 홈피에 순차로 올립니다.
..........................................................................................................................................
  ⃟ 대학산악부의 정신과 무한혁신
  ⃟ 우리에게 알피니즘이란, 그 올바른 이해
    ∎ 알피니즘의 이념과 가치지향 (1)
    ∎ 알피니즘의 이념과 가치지향 (2)
    ∎ 알피니즘과 생명존중사상
    ∎ 알피니즘과 자연환경보호
  ⃟ 우리시대 알피니즘과 대학산악부
  ⃟ 이 글을 남기면서
..........................................................................................................................................
  ⃟ 대학산악부 조직문화와 갈등문제 
    ∎ 술로 인한 갈등문제
    ∎ 소통의 갈등문제
    ∎ 산악부 세대간 교육의 결함 문제
    ∎ 산악부원 이전의 인성 자체의 결함문제
..........................................................................................................................................
∎ 알피니즘의 이념과 가치지향 (1)                                                                                ((洪)) 

 "등산(Alpinism)이 스포츠인가?"라는 물음으로부터 시작해 보자. 이 같은 물음에는 당연히 ‘등산은 스포츠가 아니다'라고 말함이 정답이다. 주석을 달아 친절히 답하면 "산을 오름이 육체적 활동을 함으로써 스포츠적인 요소가 있으나 행위자간에 경쟁하지 않음으로써 스포츠가 아니다"라고 할 것이다.  나는 등산(Alpinism)을 스포츠의 하나라고 말하는 이론을 엉터리라고  단언한다. 또한 등산을 스포츠의 영역에서 설명하려는 멍청이들에게 그 같은 시도를 그만두라고 경고한다. 이 같은 무책임한 글들이 백과사전, 저명인사 뿐 아니라 심지어는 높은 인지도를 가진 산악인 등이 쓴 글에 의해 인터넷과 책 등 온라인, 오프라인 상에서 숱하게 널려 있다.

 등산은 스포츠로 접근할 수 없는 독자적 영역이며 이념체계를 가진다. 스포츠(Sports)를 우리말로 옮기면 '운동 경기'가 최적합하다. 사전적의미를 보면 운동이란 "건강의 유지나 증진을 목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일"이며 경기란 "일정한 규칙아래 운동이나 기술, 기량 등을 겨루어 누가 잘하는지 우열을 가림"이다.

 스포츠는 달리기, 던지기 및 뛰어오르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런 신체 활동은 모두가 기본적으로 수렵의 기술이 근간(根幹)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한 먹거리, 입을 것과 잠자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한편으로 삶에 있어 재미와 즐거움을 더하기 위한 원초적 욕구를 놀이문화로 발산하고자 했다.

 사람들은 하늘과 땅, 물속의 새와 짐승, 물고기를 잡는 힘과 기술을 서로에게 과시하며 친교를 가지게 되었다. 자신의 재미를 찾고 서로에게 즐거움을 주고 공유하기 위해 운동 경기를 만들어냈다. 호모 사피엔스가 수렵과 채집문화에서 좀 더 안정된 목축과 농경사회로 들어서며 그 옛날 사냥과 물고기를 잡던 신체 활동을 놀이문화로 만든 것이 운동 경기이다. 이것이 오늘날 스포츠의 기원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사냥감을 쫓기 위해 달리기에 힘써야 했고 달리는 능력을 서로 견주어 보기도 했다. 이는 육상의 트랙 종목이 되었다. 살상 도구를 더 멀리 정확하게 투사(投射)하는 능력은 투창과 양궁이 되었다. 놀이문화가 스포츠로 자리 잡으며 중요하게 대두되는 점은 규칙과 경쟁이었다.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1896년 첫 근대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스포츠는 이후 르네상스를 맞는다. 이후 인류에게 스포츠의 의미는 확연해지며 존재감은 더욱 확고해진다.

 한편 등산이란 무엇인가? '산에서의 오름 짓이다'라고 정의하면 그만인 이 간단한 말에 대하여 각종 어휘사전과 백과사전에서는 각양각색으로 언급해 놓았다. 그것들은 고대로 부터 인류가 생존을 위한 산, 신앙을 위한 산, 전쟁을 위한 산, 과학을 위한 산으로서 사람이 산과 함께 살아온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다. 사람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산과는 달리, 여기서 언급하는 등산은 오늘날 알피니즘(Alpinism)으로 불리는 장르와 이념을 가지는 '산에서의 오름 짓'에 관한 것이다. 즉 인간이 산이라는 환경에서 생존, 신앙, 전쟁, 과학을 행하는 것과는 무관하며 순수하게 '산을 오르기 위한 오름 짓' 그 행위 자체에 관한 등산을 말함이다.

 기원후 호기심과 모험심을 가지고 산을 오르기 위해 올랐던 기록은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서구에서 문헌에 남겨진 최초의 알피니스트(Alpinist)는 이탈리아의 시인, 페트라르카1)이다. 그는 1336년 프로방스의 몽 벤투 산(1,912m)에 오르고는 힘들었던 등반의 즐거움을 아버지에게 편지로 전하고 있다. 그의 등산방식과 사고는 오늘날의 등산이 추구함과 상통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알피니즘의 맹아(萌芽)로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인문, 지리, 예술, 과학, 의학, 사상의 석학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몽 보소 산에 올랐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그는 산에 대하여도 관심이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그린 명작 '모나리자'의 미소와 그 여인이 누구를 모델로 하였는지, 눈썹은 왜 그려져 있지 않은 지 등 많은 이야기들이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모나리자 그림의 배경2) 또한 그 위치가 어디인지 수세기 동안 수수께끼의 하나였다. 그럼에도 인물에 비해 이 그림의 배경을 기억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배경에 관심이 많았다.

 모나리자 그림의 배경을 보라. 가까이 또 멀리 암봉과 침봉(針峰)으로 펼쳐진 산군(山郡)이 배경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다빈치가 처음 도입했다는 스푸마토(Sfumato)3)기법으로 그려져 있고 동양화풍의 산수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그림의 배경은 일반인은 몰라도 등산가의 눈은 비켜가지 못한다.  나는 1995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 그림을 대하였을 때 그림속의 여인 대신 배경의 산들을 보고 또 보다가는 돌아섰다. 산을 오르는 사람이 아직 몰랐다면 그림을 다시 보라. 모나리자는 신비롭게 그려진 산 그림을 배경으로 한다. 루브르 말고 지금 바로 인터넷에서 확인이 된다.

 14~16세기는 르네상스와 더불어 등산도 가일층 대두되었다. 취리히 대학의 교수 콘라트 게스너(1516~1565)는 여러 산을 즐겨 올랐다. 등산을 함으로써 그의 전공인 식물학과 언어학에 깊이를 더하였으나 그보다는 등산의 기쁨을 깨달은 사람이다. 우리나라 1950년대 중후반, 대학의 생물과와 약대생들이 이산 저산에서 식물과 약초를 공부하다 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깨닫고 전문 산악부를 창립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콘라트 게스너 교수는 라틴어로 된 등산기를 남겨 많은 사람들에게 등산에 대한 꿈과 열정을 심어 주었다.

 1574년에는 세계 최초의 등산기술서가 취리히 대학 지물러 교수에 의해 출판되었다. 1642년 6월 미국인 다비필드라는 사람은 미국 북동부에서 가장 높은 뉴햄프셔 주의 워싱턴 산(1,917m, 프레지텐셜 산맥)을 올랐다. 인디언 가이드들을 동행하였으나 그들 중 두 명만 정상에 도착하였다. 산이 신들의 거처라고 믿고 있는 그들은 산 정상에 서면 죽을 것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1760년 제네바의 자연과학자 베네딕트 드 소쉬르4)가 알프스(Alps) 산맥의 최고봉인 몽블랑(4,807m)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몽블랑의 등정에 상금을 걸었고 1786년 프랑스 샤모니의 의사 미셸 바카르와 수정을 재취하던 자크 발마가 그 정상에 올랐다. 다음해 드 소쉬르 자신이 몽블랑 정상에 올랐다. 드 소쉬르에 의한 이 일련의 몽블랑 등정을 등반사가(登攀史家)들은 근대 등반의 효시로 본다. 드 소쉬르를 과학적 근대등반의 아버지라고도 부른다. 쿠베르탱 남작이 근대 올림픽을 부흥시켰듯이, 드 소쉬르는 이전부터 지구상 곳곳에서 있었던 '산에서의 오름 짓'을 근대 알피니즘으로 재생(再生, rebirth) 시키는 토대를 이루었다고 할 것이다.

 오늘날 알피니즘(Alpinism)의 중요한 가치지향은 '순수한 오름 짓'에 관한 것일 뿐 그 이외에는 무상(無償)의 행위이다. 산을 오르기 위한 오름 짓은 대가(對價)나 보상(補償)뿐 아니라 상(賞)을 받기 위함과는 무관한 행위이다.  산을 오르는 목적이 '오르는 행위' 그 자체라고 하면 등산으로 얻는 즐거움과 깨달음 그 이외의 다른 부수적 대가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등정자들이 정상에서 국기 등을 들고 상징적 촬영을 하는 것은 알피니즘의 오름 짓이 국가나 공공으로부터 명예나 포상을 받기 위함과는 거리가 먼 무상의 행위라는 점에서 보면 그저 관행적인 것일 뿐이다. 1981년 성대산악부가 안나푸르나 남봉을 등정하고 그 당시 최고 권력기관 국보위가 주겠다는 포상을 감히 완곡하게 거부한 것은 이 산악부가 가진 알피니즘의 가치철학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이 같은 점에 주목하면 근대등반의 효시가 된 몽블랑 등정에 상금을 내걸었고 등정자가 그것을 받은 것으로부터 알피니즘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큰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에 더해 근대 등반 250년 역사에서 그 누구도 이 아이러니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지 않음은 더 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예전의 알프스 등반 가이드나 오늘날 히말라야 셰르파와 같이 산을 오르는 행위에 목적을 둔 사람을 안내하거나 짐을 나르며 돕는 것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등산을 하며 받는 대가는 별론으로 한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등산행위가 아닌 등산행위를 돕는 행위이다. 이 같은 측면은 다음에 다시 논의를 다루기로 한다.

 드 소쉬르에 의한 몽블랑 등정 이후 순수한 오름 짓으로의 등산, 스포츠와는 구분되는 육체의 물리적 활동은 알프스 산맥에서 알피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체계화되고 발전하였다. 그리고 지구상 각 대륙의 산으로 무대를 옮겨가게 되었고 그곳들에 전파된 알피니즘은 현지에서 자생적 진화를 계속하였다. 

 결론해서 오늘날 알피니즘이라는 이름을 가진 등산행위는 스포츠와 일부 동질적인 점이 있기는 하나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독자적 이념의 영역으로서 산에서의 순수한 오름 짓의 가치지향이다. 누가 어떻게 해석하든 알피니즘의 본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함이 없다. 나는 "알피니즘 이념의 근본은 '산에서의 순수한 오름 짓'에 관한 사상이며 운동이다"라고 정의한다. 끝
..........................................................................................................................................
1) 페트라르카(Petrarca Francesco, 1304~1374)
 1304년 이탈리아 아레에서 태어났다. 중세 암흑기를 뚫고 문학의 재생에 기여하여 종말론적인 현상의 타파에 주력하면서 고대 로마의 산문과 운율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한 공적이 있는 문인 산악인이다. 그에 관한 기록은 이탈리아의 폴 귀통(1937년 이탈리아 산악회 회보), 카르루치의 수필, 툼비니의 페트라르카 연구 등의 기록 가운데서 그의 산행 기록을 찾아낼 수 있다. 그가 1352년에 몽벤투의 등정기록을 적었다고 빌리아조 빌리 교수가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절대적 의미의 등산가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가 생존하던 시기, 산을 오르고 정찰루트를 잡아 탐색해 나가겠다는 행위는 현대 등반의 실마리가 되고도 남았다.
 
 아비뇽 근처 6,427피트의 몽벤투를 등정한 해는 1336년이었다. 그는 현대의 우리들이 마터호른을 언젠가는 한 번 올라보겠다는 욕망을 지니고 있듯 그 등반에의 오랜 꿈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친구 디오니시오 로베르트(Dionisio Roberto, 보르고 산 세폴크로 거주)에게 보낸 편지는 4월 26일 실행에 옮겨짐을 시사했다. 그는 이 등반으로 현대 낭만주의 알피니즘의 태동을 예고하는 효시가 되었다. 그는 6세기 후에 다가올 알피니즘의 문을 일찍이 두드렸던 선각자의 한 사람이었다.
 (출처 : 등산 野話 秘史|지난 시절 등산과 산악회 관련 야화(野話)와 비사(秘史)를 기록)

2) 모나리자의 배경
 모나리자가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되는 또 다른 이유는 장엄하고 험준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배경 때문이다. 레오나르도는 원시적인 모습의 돌산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발산되는 숭고한 장관을 스푸마토(Sfumato)기법을 사용하여 만들어 냈다. 이 풍경은 실제의 것이 아니라 레오나르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이며, 이 상상력은 자연현상에 대한 집요한 관찰과 연구로부터 태어난 것이다.
 (출처 : 지암볼로냐 http://giambologna.blog.me/50188233178)
 
 명화 모나리자 인물의 배경의 위치가 어디인지가 지난 수 세기 동안 수수께끼가 되어 왔으나 최근 이탈리아 연구가들에 의해 그 장소가 규명될 근거가 발견됐다. 이 초상화의 왼쪽 어깨 위에 다리가 보이는데 이는 이탈리아 북북의 보비오 마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다리는 1472년 홍수로 붕괴되었고 모나리자 작품의 완성은 1503-1506년 사이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다빈치가 그 다리를 상상해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출처 : www.ppomppu.co.kr/zboard/view.php?id=freeboard&no...‎)

 '모나리자'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담겨 있을까. 다빈치는 작품에 은어나 상징을 삽입한 이른바 '다빈치 코드'로 유명한데, 최근 모나리자에 숨은 코드를 통해 작품 제작 배경과 장소, 모델이 된 인물을 추정한 연구결과가 유럽 학계에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1월 11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은 이탈리아 미술사학자 칼라 글로리가 모나리자가 그려진 장소와 모델의 정체에 대한 실마리를 최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 등은 모나리자의 왼쪽 어깨 부분에 그려진 아치형의 석재 다리는 이탈리아 북부 보비오 지역에 실존했던 것이며, 다빈치는 인근 보비오성에서 모나리자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그림 속 다리 교각에 숫자 7과 2가 숨겨져 있다'는 역사학자 실비아노 빈센티의 주장에 터잡은 것으로, 글로리는 '7과 2는 보비오 다리가 홍수로 붕괴된 1472년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출처: http://www.kyoposhinmun.com/detail.php?number=5081&thread=14r  05)

3)스푸마토(Sfumato)
 안개처럼 색을 미묘하게 변화시켜 윤곽선을 자연스럽게 번지듯 그리는 명암법. 연기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스푸마레(Sfumare’)에서 나온 말로, 색을 미묘하게 연속적으로 변화시켜서 형태의 윤곽선을 번지듯이 하여 차차 없어지게 하는 명암법이다. 15세기 초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의해 처음 도입된 방법이며 ‘모나리자’에서 두드러지게 사용됐다.
 (출처 : 다음, 한국어사전)

4)베네딕트 드 소쉬르(Horace Bénédict de Saussure,  1740. 2. 17~1799. 1. 22) 
 스위스 제네바 출생. 물리학자, 지질학자, 초기 알프스 산맥의 탐험가. 대기습도를 측정하기 위한 개량된 습도계를 개발했다. 그는 1762년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물리학 및 철학 교수가 되었고 4년 후에는 전위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는 기구인 전위계를 최초로 개발했다. 지질학이라는 용어도 〈알프스 여행 Voyages dans les Alpes〉(1779~96) 제1권 출간 때 과학적 학술용어로 소개되었는데, 이 저서는 30년 이상의 지질학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것이다. 1783년 소쉬르는 습도측정을 위해 인간의 머리카락을 사용한 최초의 습도계를 만들었다. (출처 : 다음, 백과사전)

 소쉬르가는 5대째 학자를 배출한 세계적인 학문의 명가이다.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세계적인 언어학자로 페르디낭 드 소쉬르(1857-1913)가 있다. 소쉬르의 증조부는 17세기에 정치적 박해를 피해 프랑스에서 제네바로 망명하여 이곳에 정착했다. 소쉬르의 조상들은 대대로 지질학에 조예가 깊었는데, 증조부 호라체 베네딕트(1740-1799)는 세계 최초로 몽블랑 등반에 성공했고, 변호사이자 농학자인 니콜라스는 프랑스의 백과사전 집필자로 참여했던 인물이다. 소쉬르의 조부 니콜라스 테오도르는 제네바 대학의 지리학과 광물학 교수를 지냈고 지질학자였던 앙리 드 소쉬르도 미국과 멕시코를 탐험했다. 소쉬르가문은 호라체 베네딕트-니콜라스 테오도르-페르디낭 드 소쉬르로 이어지면서 학문의 대가를 탄생시켰다. (출처 : www.지혜의전당.com/.../zboard.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