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2-0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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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형용
 조회 : 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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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원래 오늘의 일정은 죽음의 계곡에서 오전에 설상등반 훈련을 하고 오후에 훈련을 조금 더 한 다음에 설동을 파고 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죽음의 계곡에서 내일 금요일 아침에 비선대를 통해 내려와 그 다음날 토요일에 있는 내 개인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을 준비하려 했다. 그런데 어제부터 기온이 너무 높아 설동을 파기에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한다. 그래서 오전은 강연과 비디오 시청을 하고 오후에 이르러 서야 양폭을 지나 죽음의 계곡에서 1시간 정도 훈련을 한 다음 희운각 산장에서 취침을 한다고 한다.
희운각에서 잔다면 내가 금요일날 서류정리와 인쇄를 하기 위해 마지노선으로 도착해야 할 오후 7시가 지켜질 수 있을 지 회의적이었다. 터미널에 3시에는 도착을 해야 하는데 희운각에서 소공원 정류장 까지만 해도 무지하게 걸린다. 고민이 많아졌다.
여러 고민 끝에 양폭산장까지 산행을 같이하고 거기서 혼자 내려오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밤새 눈이 끝내주게 와서 소나무와 참나무의 가지에 온통 눈꽃이 피었는데 비선대에서 내려가 버린다는 것은 내 미적 취향이 용납하지 못했고 2시간이라도 워킹은 해야 그나마 속죄(?)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오전에는 어제 밤에 다 하지 못한 빙벽강좌를 추가로 했다. 홍익대 성재형께서 강의를 해 주시는데 재미있고 집중도 잘 된다. 그리고 나서 산악영화를 한 편 보았다. 중간 쉬는 시간에 성재형께서 빙벽을 위한 턱걸이를 배울 사람을 모집하신다. 여러 가지 턱걸이 방법을 알고 있지만 빙벽을 위한 턱걸이는 무엇일까 궁금하다. 배우고 싶은데 나서는 형, 후배가 없다. 눈치 보다가 그냥 가실 것 같길래 얼른 배우겠다고 손들었다. 두 가지를 가르쳐 주셨는데 하나는 이미 알고 있는 방법이다. 턱걸이 철봉이 세로로 막대기를 매달아 놓고 그것을 잡고 턱걸이를 하는 것이다. 악력도 좋아지면서 세로로 잡고 몸을 끌어올리는 근육을 발달시킬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철봉에 바일을 매달고 턱걸이를 하는 것이다. 원래는 각목이나 합판을 붙여놓고 그것을 바일로 1센치 정도 찍어놓은 다음 그것에 의지해서 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철봉에 바일을 거는 방식으로 해도 괜찮다고 한다. 어차피 내 방문에 철봉이 설치되어 있으므로 거기에 바일을 걸고 턱걸이 하는 상상을 한다. 돈이 비싸기에 먼 일이기도 하거니와 과연 그 꼴을 보시면 우리 부모님께서 뭐라 하실까. 끔찍하다. 대신 부실 문에 철봉을 매다는 상상을 해본다. 아무튼 이 턱걸이의 초점은 바일이 흔들려서는 안되고 팔도 되도록 고정이 된 상태에서 몸을 끌어올린 채 좌우로 몸을 이동하는 동작을 수반하는 것이다. 성재형께서 말씀하신 것 중에 자신을 믿으라는 것 외에 지나가는 가르침이셨지만 강조된 것이 하나 있는데 빙벽을 찍은 바일의 팔꿈치는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가래비에서 내 바일이 빠지는 위기는 언제나 바일끝이 옆으로 흔들렸을 때 온 것 같다. 바일이 찍인 방향에서 正수직으로 팔을 고정해 놓으면 흔들릴 일이 별로 없을 것 같기는 하다. 하나 또 배웠다. 아무튼 성재형께서 가르쳐 주신 데로 턱걸이를 해 보는데 얼추 잘 된다. 칭찬 한 마디 듣고 성재형께서 재미있는 것을 가르쳐 주신다고 하신다. 갑자기 바일을 잡은 상태로 몸을 뒤집으시더니 발 한쪽을 다른 쪽 손에 거신다.
아뿔싸! 저것은 내가 박희용 선수 아이스 월드컵에서 본 바로 그 장면 아닌가! 자세 이름은 피겨포(?)인가 그렇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번 따라해 봤는데 오른 손을 고정시킨 상태에서는 왼쪽 손이 한 한 뼘이상 올라가는 것 같다. 악력과 복근힘이 무지하게 많이 들어가는 동작이다. 반면 힘이 딸린 왼쪽 손을 고정시킨 상태에서는 오른 손이 한 5센티미터 올라가려나 싶다. 좀만 복근힘과 악력을 키우면 곧 잘 될 것 같다. 희망이 보인다. 넋놓고 바라보던 그 장면을 내가 배우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점심을 먹고 출발이다. 난 비선대 산장을 들렀다 가는 것 보다 그냥 내가 가지고 가야 할 짐을 다 짊어지는 것이 여러모로 나을 것 같아서 다 짊어져 봤다. 내가 두 손으로 들어 팔을 구부릴 수 있는 최대 무게 한도가 28키로 정도다. 근데 그렇게 안 된다. 그 정도는 넘나 보다. 그래도 양폭 까지인데, 모두 식량이건 뭐건 필요한 것만 챙겨서 20키로 남짓인데 나만 헥헥대는 꼬락서니도 한 번 경험해 볼 만한 것 같다. 걷기 시작한다. 오늘은 첫날 있었던 실수를 다시 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으슬으슬 춥게 입고 나갔다. 딱 두 겹인데 역시 걷다 보니 금새 추움은 사라지고 오히려 조금 덥다. 그런데 조금 힘들다. 모든 짐이 어택 안에 딱 들어가 있으면 모르겠는데 이중화와 헬멧이 바깥에 매달려 있으니 뭔가 무게중심이 더 안 맞는 것 같고 따라서 무게도 더 많이 나가는 것 같다. 40분 정도 걸으니까 힘들어 오기 시작하고 높은 오르막은 굉장히 힘겹다. 중간중간 눈 내린 풍경이 정말 예쁘다고는 생각이 드는 데 앞사람 따라가려니 볼 여유도 없고 힘들었다. 껴 입은 것은 겨울용 윗도리 한 겹과 방수자켓 뿐인데 너무 더워 땀이 죽죽 난다. 다행히 좀 더 가다가 앞의 팀이 옷을 껴입거나 벗을 시간을 준다. 얼른 자켓을 벗는다. 땀차는 것보다는 추운 것이 훨씬 낫다. 계속 걸었다. 앞사람과 조금 쳐지기 시작한다. 챙피하다. 그냥 비선대에 불필요한 바일들과 스크류 등의 장비는 놓고 올 걸 그랬다. 이찬이가 묵묵히 뒤에서 따라와 준다. 매우 고맙다. 나보다 나이는 한참 많지만 정말 친근한 녀석(?)이다.
우여곡절 끝에 양폭에 도착한다.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는데 다시 갈 생각하니 한 숨부터 나온다. 오는 길에 눈이 잘 다져진데다가 때마침 이 날 오후부터 급격히 온도가 하락하기 시작했는데 조금 걱정된다. 한 3번은 자빠지겠지 싶다.
커피를 타고 안에 물을 넣어서 냉커피를 만든 다음 지금까지 조를 잘 이끌어오신 두진형과 이찬이 그리고 오늘 우리의 조 강사를 맡아 주신 성재형께 인사를 드리고 떠난다. 설동 한 번 파 보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다. 다시 돌아가는 길은 내리막 위주이다.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리거나 훨씬 단축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아까 풍경을 제대로 못 즐겼는데 시간이 단축될 만한 계단에서 실컷 단축하고 풍경을 즐기고 눈이 다져져 얼어버린 구간에서는 돌부리가 없으면 글리세이딩 할 요량이었다. 그래서 얼른 피켈을 꺼낸다. 계단을 얼른 내려섰는데 아니나 다를까, 계단이 아닌 곳은 수십명이 밟아 잘 다져진 내리막 얼음판이었다. 그런데 글리세이딩을 하기에는 돌이 꽤 많이 보여 고민하다가 자세를 낮추고 한 발 한 발, 스텝커팅을 해서 갔다. 피켈이 조금 더 길었으면 했다. 부실에 큰 뼘으로 세 뼘 정도되는 피켈이 있었다면 좋았을 뻔 했다. 아니면 두진형한테 피켈을 빌려서 오는 것도 좋았을 텐데 싶었다. 아무튼 그렇게 열심히 내려가고 다시 계단에서 뛰어 내려가고 경치 좋은 부분에서 쉬었다. 두 번째 쉬었던가, 바로 밑에 계단이 무지 많은 지점에서 쉬고 있는데 내 바로 앞에 있는 봉우리로 운해가 넘어와 능선을 탄다. 장관이다. 어떤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어도 내가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광경의 1%도 미적으로 재현하지 못할 것이다. 그 운해가 능선을 넘어 나를 관통한다. 산 다니며 이런 감동 처음이었다. 한 번 감동을 맛보고 나니 혼자 내려오는 길이 고요하고 오히려 너무 좋았다. 짐의 무게마저 덜어낸 느낌이다. 쉴 지점도 아닌데 앞을 보다가 어느 새 하얀 광경이 아름다우면 내 발은 멈춰 있었다.
무심하게 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멈춰 있었고 내가 본 그것이 아름다웠음을 느낀 이 감정을 신흥사를 지나고 소공원으로 가며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가 요즘 공부하고 있는 미학 중에서 칸트의 개념과 얼추 비슷하다. 칸트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지각을 무관심적 취미판단이라고 했는데, 내가 딱 그 꼴이 아닌가. 그냥 들여다 보았을 뿐인데 어느새 난 들여다 보는 자체를 맛보고 있었던 것이다. 칸트는 무엇을 보고 그러한 감정을 느꼈을까 싶다.
권금성 케이블카 타는 지점으로 다다랐다. 거의 다 온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온도가 더 높은 지 비가 왔는가 보다. 눈의 흔적이 없다. 하지만 옆으로 돌아보니 어느 고도에서부터는 새하얀 세상이 펼쳐져 있다. 고동색 숲과 하얀 숲의 경계, 뚜렷한 그 차이는 누가 봐도 장관이었다. 평소 히말라야의 아마다블람 사진을 보면서 실제로 보면 정말 아름답겠다 싶었는데, 지금 이 광경보다는 아름다울까 싶을 정도였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돌아보니 산을 알아간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축복이지 싶다.
다 참여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래도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것 같아 적어도 나 하나에게는 최고의 산행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갔던 산악부 산행 중에 가장 즐거웠다. 사실 지금까지 나에게 있어 산악부 산행은 어느 정도 부담이었고 크게는 어려움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중간중간 재미있는 추억은 있었어도 그리고 돌아보았을 때 여기는 정말 경치가 아름다웠노라고 느낀 산행은 많아도 산행 자체를 돌아보았을 때 즐거웠던 산행은 없었다. 난 벌을 정말 무서워하는데 산에서는 끊임없이 벌을 만났고, 고소공포증은 후등에서도 완벽히 극복되지 않는데 난 선배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떤 산행에서는 산행도 시작하기 전에 갑자기 장염에 걸린 일도 두 번이나 있었고 어떤 산행에서는 무릎을 꽤나 아프게 다쳤다. 신입생 때는 무서웠고 몰랐으며 선배가 되어서는 쌓아온 경험과 지식보다 내가 맡아야 할 책임이 더 컸다. 하지만 난 하고싶은 일이 많았고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무지막지 양의 일들이 나에게 밀어닥치기도 했다. 그래서 산행도 좀 빠져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선배로서이건 부원으로서 이건 더군다나 얼떨결에 주어진 주장의 위치에서는 더더욱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산에 갈 때 부담은 더 컸다. 부담과 중압감이 산행을 하며 한 번도 나를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엔 처음엔 그런 고민을 했었는데도 산행을 하면서부터는 그런 부담을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보다 윗학번이 정말 많아서 그랬는 지는 몰라도 마냥 힘들어도 혹은 아파도 오늘 혹은 그 다음날 가야할 산만 생각할 수 있었고 돌아보면 그것은 재미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냥 이런 것이었구나 싶다.
아무튼 감회는 그렇고 이제부터는 정말 재미있게 그리고 더 재미있기 위해 군대가기 전까지는 열심히 산에 갈 생각이다. 여자친구에게도 암벽등반을 가르쳐서 짬짬이 데이트도 몇 번은 산에서 하고 싶다. 군대에 가고 나서도 난 카투사가 되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휴가가 많을 것이다. 되도록 평택이나 용산, 의정부에 배정되어서 휴가 중에 절반 남짓은 산에 가고 싶다.
그래서 지금 생각으로는 내 선배들만큼은 아닐 지라도 내가 충분히 즐길 만큼은 배워두고 평생동안 두고두고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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