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04-03 01:37
|
글쓴이 :
김대현
 조회 : 2,185
|
날짜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2일과 3일에 걸쳐 벌어진 일들이었으리라..
하지만 새벽부터 새벽까지는 많은 것이 기억이 난다.
젖은 몸에 불어오던 칼바람이
잠시 멈추었을 때 느꼈던 천국
간절히 먹고 싶었던 라면 한 그릇
먼저 내려간 녀석이 한 없이 부러웠던 순간들
거의 무릎으로 기어내려오던 하강길
이상하던 너의 모습
공포처럼 다가온 비박이라 단어
칼바람 막아주던 판쵸..
너를 잠깐 주무르던 일
막연한 기다림....
아침이 올까하는 두려움
안개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공포와 안개의 환상
그 와중에 인생을 이야기 하자던 녀석
그 때 노래를 불렀었던가?
졸음...
멀리 보이던 송추쪽 어딘가의 불빛들
아래에서 들려오던 사람들 목소리
우리를 향해 올라오던 소리들
나를 빛추던 한줄기 랜턴
너의 목을 만지고 나지막히 말하던
죽었다는 소리.
죽었나?
하지만 너무도 편안하게 자는 것 같던 너의 모습
그 때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솔직히 슬픈 감정도 없었다.왜 그랬을까?
그것이 죽음인지도 인식하지못하고
너를 위한 눈물도 없이
나만 살자고 기다리던 하강순서
하강을 기다릴 때
온 몸이 개떨듯이 다가온 추위와 공포
생전처음 본 로보트라 불리던 하강기
마지막으로 돌아본 너의 잠자는듯한 편안한 모습
여전히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내려와서 누군가 건네준 대충 탄 듯한 아주 맜있었던 커피
내 부모님 걱정하실까 간절한 마음으로 누구에겐가 불러준 내 인적사항
살았다는 안도감에 서둘러 산장으로 향하다 하강코스에서 느닷없이 마추친
졸라리 아름답던 서울의 야경.. 우리의 고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더구나.
그리고 산장
아무리 풀르려해도 풀리지 않던 수제 안전벨트
안전벨트를 풀려고 젓가락을 쑤셔박던 일
그러다 그냥 잠들었지... 얼마나 달콤한 잠이었던가?
누군가가 깨우던 목소리
그제야 들었던 또 다른 슬픔..
설마하는 생각속에 야영지로 내려가다 마주친
머리가 하얗게 세어서 올라오시던 아버지의 모습
의젓한 모습 보이려고 애써 담담한 체 했던 나
아버지를 보고도 울지 않았다.울면 안되는 줄 알았었지.
그리고 야영지 부근에서 만난 하늘 같던 0B형들
나를 산악부로 꼬시고는 저는 나가버린 범우란 과친구놈..
전날 새벽에 떠나서는 꼬박 하루가 더 걸려서 다시 찾은 야영지
텐트를 보자마자 까닥없이 쏟아지던 눈물
형들을 붙들고 울던 기철선배의 아버님...
도선사 몰려있던 기자들을 보고
그제서야 큰일인가보다 생각했던 나
참 거시기한 마음으로 올라갔던 대성로 길
그리고 수선관 부실..
부실을 지나치면서 어떤 놈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그 놈을 때려주려고 쫓았나갔던 모습
그다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병원.........그리고 이별...
까진 무릎을 치료받던 학교 의무실...
나와는 상관없이 과친구들의 입에서 입으로 떠돌던
살아돌아온 자의 무용담.
그리고 졸라리 우리를 울리던 술자리들
또 산에 갈거냐고 수도 없이 받았던 질문들..
밥먹다 체했다고 밥을 안먹을 수 없지않느냐고 멋진 대답만 한,
주로 주둥이로 산에 다녔던 나.
서서히 밀려오는 알수없는 불만, 의문점, 후회들...
정말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던 나...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던 나
그 순간....
1년후
그리고 학군단 제복을 입고 죄스런 마음으로 찾았던
과천 경마장 앞 어딘가에 있었던 너의 집
대문 앞에서 어떻게 추모행사를 알려야 할까 고민했던 나.
최대한 슬픈 모습을 지어야 할까?
당당하고 씩씩한 모습을 보여야 할까?
가슴을 찢는 소리를 내며 열리던 함석대문..
마주친 너의 아버님.
처음으로 살아있음이 죄스러웠던 정말 죄스러웠던 너의 아버님과의 만남
추모행사를가 있음을 말했던 나.
나의 모습을 통해 너를 그리는 것 같았던 아버님의 눈빛....눈가에 맺힌 아버님의 눈물..
그 눈 빛이 견딜 수 없어 부끄럽게 서둘러 빠져나오던 나의 모습.......
그리고 오늘....
그 일이 없었더라면 말이다.
너희들도 이제는 중년이 되어 자식걱정 노후 걱정 하는 나와 같은 인생을 살았겠지?
젤 잘 생겼었던 친구,, 조그만했던 친구, 그리고....
너희들의 아이들이 있었다면 너희들의 아이들도 붕어빵이었겠지....
지나고 보면 너무도 빠르게 흘러버린 세월....
미안하구나......그때도 지금도... 지켜주지못해서
그때나 지금이나 무기력하긴 마찬가지구나...
이제는 기억도, 불만도 ,의문도,
모두가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렸구나.
4월이 오면 기억 한 번 하는 것만 .......
내가 할 일이구나...
내내 잊고 살다가 4월이 오면 한 번만 기억하는
딱 두번 만났었던 너희들의 모습, 동기애, 우정 그런 것들이 생기기도 전에
떠나버린 너희들
영원히 대학시절의 모습으로 기억에 남는 너의 모습..
내년 4월이 오면 또 다시 기억하겠지...
내내 잊고 살다가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