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봉아, 너도 오비니까 이제 여기 잡기장을 봐야겠지?

 내가 남체에 도착하고 나서 3일 동안 눈이 왔어. 보통 사람들 많이 가는 에베레스트쪽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고교리쪽은 가는 사람이 거의 없더라. 우여곡절 끝에 힘들게 라파르마까지는 갔는데 포터는 못가겠다고 하더라. 운동화에 청바지에 다리 부러진 고글에 여기까지 포터가 함께 와준게 고맙지. 라파르마에서 동판, 드릴, 햄머, 볼트 등만 다시 챙겨서 출발했는데 도저히 마체르마까지 못가겠더라. 보통 길일 때 두 시간 거리의 막막한 쿰부를 나 혼자 러셀하는게 보통일이 아니더라. 마체르마를 향하다가 결국엔 빽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라파르마에서 5분 정도 조금 더 간 거리에서 유목민 집이 있고, 뒤쪽 능선으로 큰 바위 하나 보이길래 올라갔더니 그 바위가 능선 바로 아래더라. 능선 따라 카조리 방향으로 백미터 정도 더 가서 작은 케른을 세우고, 그 오른쪽 밑에 괜찮은 바위가 보이길래 추모 스텐판 설치했다. 봤지?

 동판으로 하라니까 스텐으로 만들어서 잘 휘지도 않고 드릴로 구멍 뚫기도 힘들고. 네 선배 기석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일단 사람들이 다니는 길 옆은 손을 탈까봐 피하고 싶었고, 비 맞지 않기 위해 오버행 같은 곳을 찾았다. 그리고 최대한 카조리가 잘 보이는 면을 찾았다. 이 바위에 오래된 룽다가 있는 걸 보니 평범한 바위는 아닌 것 같더라. 처음 올라갔을 땐 카조리가 보이던데 나중엔 구름껴서 안보이더라. 마체르마까지 가서 카조리가 잘 보이는 곳에 설치해주고 싶었는데 나 혼자의 힘으론 부족했다. 미안하다. 내가 무슨 히말라야 제설차도 아니고. 마체르마까지 러셀 안된 길이 너무나도 까마득하더라. 내가 돌아갈 일정도 있고. 그래도 맑은 날이면 카조리가 보이니 위안을 삼도록.

 기억나냐? 2002년 쯤 겨울이었던 것 같은데, 실폭 앞 강둑에서 민우형, 명근이, 너와 함께 소주 한 잔 하며 이야기 나눌 때 네가 하도 말이 없으니 “선봉아, 뭐라도 얘기 좀 해봐.” 했더니 “10년, 20년 차이 나는 선배들하고 무슨 얘기를 해요?” 했던거. “난 민우형하고 10년 차 인데도 얘기 잘 하잖아?” 그랬더니 특유의 똥 밟은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있었던 거. 평소 말도 많고 활기찼다면 많은 추억이 있었을텐데 아쉽구나.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나와 민우형하고 너와는 9년, 19년 차이다.
네가 인공등반 가르쳐달라고 한 거에 한이 맺혀서 몇 년 전 재학생 몇 놈 데리고 가르쳤더니, 당시엔 “피피가 정말 좋네요.”라고 하던 인간들 아무도 산에 안다닌다. 젖달라는 놈에게 젖 주지 못해 한이 맺혀 울지도 않는 아이에게 젖 물렸더니 오바이트하고 설사하는구나. 이래저래 아쉽다.

 너 지옥이지? 이렇게 선배들을 두고 먼저 갔으면 당연히 지옥이지. 내가 예전에 교회 주일학교 다닐 때 지옥은 아주 많이 따뜻한 것처럼 묘사하던데, 그럼 너 안피던 담배도 배웠겠지? 네팔 담배 하나 불 붙여놓고 왔다. 난 한국에서 타르 5.5mg의 담배를 피는데 이 네팔 담배는 14mg더라. 목 아프다. 넌 스트레스 많이 받으니까 이 정도는 피워야 할거야.

 선봉아, 조금 외롭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려. 우리 학교에 쟁쟁한 형들 많잖아. 그 형들이 꼭 다시 카조리를 찾을거야. 반가운 형들 잘 봐주고 그때까지 기다려. 잘 지내고. 늦게 찾아왔다고 원망 마라. 네가 우리를 잊을 순 있어도 우리는 널 잊지 않았다.



같이 했던 산행을 같이 오르던 그 산을
함께하였던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너와 그 산 카조리를 가슴에 새긴다.
우리 모두의 산행에 영원히 함께 하기를...



추모판을 만들어준 후배들과, 도움 주신 민우형과 형수님, 명근이, 한상이, 기석이, 주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