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9-21 13:26
상영형을 그리며 2
 글쓴이 : 기러기
조회 : 3,100  

  '심장마비', 네 글자 남겨놓고 홀연히 이렇게 가시는 건 평소의 형답지 않습니다.      
  형은 ’77년 일본 북알프스 원정에서 돌아오며 픽켈을 구해다 주셨지요. 젊은 날의 저는 그 픽켈로 히말라야와 카라코람을 등반했지요. 겨울 산에서는 아직도 저의 분신입니다. 이제는 오래된 이 픽켈을 형 보듯이 해야만 한다는 말입니까?

 가시는 길, 형의 영정사진은 로맨티스트 답게 넥타이 맨 정장 차림이 아니었습니다. 학창시절, 속세이건 산에서건 즐겨하시던 바둑무늬 모직 머플러가 형 다움을 더해 주었습니다.

 사흘 전 9월 16일 일요일, 정오가 조금 지나 벽제에서 형은 한줌 흰가루로 化身하여 작은 단지로 들어 가셨습니다. 두어 시간 지나 오후 세시 경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에서 형은 가로 세로 30센티 남짓한 작은 방에 자리하시고는 영면에 드셨습니다. 마지막 절을 올릴 때 지난 날 형과 함께 했던 동영상들이 순서대로 스치며 지나갔습니다.
 마침내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옆에서 절하던 병국형과 세광형도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형수는 차분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실감을 못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 안스러웠습니다. 감정을 추스르며 형수의 손을 놓고 돌아서는데, 세광 형이 자신의 명함에 우리 산악부 홈피 아이디와 폰 번호, 이멜을 꼼꼼히 적더니 형수 손에 쥐어주고는 조카애들 결혼할 때 꼭 연락해야 한다고 신신당부 합디다. 같이 늙어가면서도 한살 더 먹은 선배가 한참 어른스러웠습니다.

 상영형! 대학산악부에 몸담아 꼴배(님) 같은 아우 하나 두었으니 서둘러  떠나시는 길에 큰 위안을 삼으셔도 되겠습니다.

 우리 OB들은 산악부 시절 이후 오랜 세월을 여러 선후배들이 미운정, 고운정 함께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영형에 대한 기억은 고운정 만 남아 있는 것이 아마도  저 뿐만은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모난 구석이라고는 없는 성품에 남을 배려하는 천성 때문이겠지요. 

 그럴지라도 아직 정신이 맑으신 노모를 두고 앞서 가는 점은 두고 두고 나무랄 터이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상영형! 당신은 누구보다 성대산악부다운 산사람이었습니다.
 형의 육신이 가루되어 조그만 단지안에 들어가던 사흘전보다
지금 이 순간 그치지 않는 눈물은 왠지 모르겠습니다.

 형! 내세에서 신명나게 바우 한번 합시다.

 형!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편히 잠 드시구려. 
                                                                           이천 십이년 구월 십구일 
                                                                                                              아우 홍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