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찰 산문의 의미 ( 일주문,금강문,천왕문,불이문) *****
큰 사찰에 가면 절 입구부터 여러 개의 문(門)이 있다. 이것은 속세부터
부처의 세계로 가는 하나하나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 한다.
부처가 있는 수미산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수미산의 기슭에 먼저 도착해
야 하는데 이때 처음 나타나는 문이 일주문(一柱門)이다. 일주문은 사찰
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중 첫번째 문이며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다.
네 기둥[四柱] 위에 지붕이 있는 일반적인 건축 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
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일주문은 일
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사찰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
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
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한다.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
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다.
두번째 문이 금강역사 인왕 2명이 지키는 금강문이며, 세 번째 문이 사
천왕 4명이 지키는 첫번째 하늘나라인 사왕천을 지나서 네번째인 불이문
에 도달한다. 불이문까지 도달했다면 드디어 부처님이 계신다는 수미산
부근에 도달했는 의미이다.
불이문(不二門)을 다른 말로 해탈문이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번민을 씻
고 해탈하는 순간을 환영한다는 의미이며, 중생과 부처가 하나가 되는
것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에서 불이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사람이 걸어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 28천 중 나머지 26개의 하늘
나라는 말그대로 하늘에 떠 있는 세계이다. 이 모든 곳을 통과해야 비로
소 부처님이 계신 곳에 다다를 수가 있다. 즉, 사람이 걸어서 갈 수 있
는 마지막 관문이 바로 불이문이다. 따라서 사찰에서 불국세계에
들어서는 마지막 문이 바로 불이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불국
사를 예로 설명하면, 불국사의 불이문은 자하문(紫霞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이 문에 들어서려면 청운교와 백운교를 거쳐야 하는데 두군
데 모두 33계단이다. 곧 도리천의 33천을 상징적으로 조형화한 것이다.
두번째 하늘나라인 도리천의 수미산의 정상을 지나야만 불이문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비로소 부처님이 계신 곳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첫 산문인 일주문부터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 해탈문인 불이문의
여러 산문(山門)을 지나 이제 새로운 세상에 도달한 것이다.
불이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종루나 종각이 있다. 불이문에 도달한 사람을
환영하는 천상에서 들려오는 환희의 종소리를 들려준다. 종루나 종각에
걸려있는 범종의 표면에는 악기를 연주하며 하늘을 나는 선인들의 모습
인 주악비천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곳 종각(범종각, 종루, 범종루)에는
불교의 사물인 범종‧ 법고‧ 운판‧ 목어등이 있다.
불교에는 체용(體用)설이라는 내용이 있다.“체”는 본체적 존재로 형이
현상으로 형이하적(形而下的) 세계에 속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체는
본질이고 용은 그것의 쓰임입니다. 그리고 본질인 체는 왼쪽에 그것의
쓰임인 용은 오른쪽에 위치한다. 부처님이 계신 법당쪽에서 보면 불이문
은 왼쪽, 종각은 오른쪽에 있다. 즉 본질인 해탈을 뜻하는 불이문은 왼
쪽이며, 종소리는 부처님의 위대한 뜻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소리는 작용
이므로 오른쪽에 위치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한가지 예로 목탁을 칠 때
목탁은 왼쪽, 목탁채는 오른쪽에 들고 친다.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목탁
은 불변의 본질인 체이라서 왼쪽이며 목탁채는 그 작용인 용에 해당하기
때문에 오른쪽이다.
***** 이판사판? *****
막다른 궁지 또는 끝장을 뜻하는 말로 뾰족한 대안이 없음을 비유한 단
어에“이판사판(理判事判)”이라고 있다. 이 단어는 이판(理判)과 사판
(事判)에서 유래했다. 이 이판과 사판은 불교용어로서 조선시대에 생성
된 말이라고 한다. 조선 건국에 참여한 신흥 유학자 사대부 세력이 건국
으로 억불숭유(抑佛崇儒)를 표방하였다. 고려 말에 불교의 폐해가 컸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불교는 정권의 교체와 함께 탄압의 대상이 되고 승
려들은 천민 계급으로 전락했다. 승려들이 나뉘게 됐다.
그 하나는 사찰(寺刹)을 존속시키는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불법(佛
法)의 맥(脈)을 잇는 것 이었다. 그래서 일부는 폐사(廢寺)를 막기 위해
기름이나 종이‧ 신발을 만드는 등 천민들의 일에 종사하면서 사원을 유
지하였고, 한편으로는 은둔하여 참선 등을 통한 수행으로 불법을 잇는
다. 앞의 사찰을 존속시키는 역할을 한 승려들을 사판승, 뒤의 수행을
하는 승려들을 이판승이라 하였다. 결국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의 현대
불교가 융성한 것도 이 두 부류의 승려들이 자신들의 소임을 다했기 때
문에 가능하였다고 본다. 그런데 이 이판사판의 뜻이 전이되어 부정적
의미로 쓰이게 된 배경에는 조선의 억불정책이라는 최악의 시대적 상황
에 의한 것이다. 승려는 최하 계층의 천민신분이었고 한양에 출입이 금
지되는 등의 나쁜 상황이었다. 당시에 승려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막다
른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판사판은 끝장을 의미하는 부정적
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조선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는 사판승이 일본불교의 영향을 받아 결혼
을 하는 등의 사례도 많았다고 한다. 8․15광복 이후 비구승과 대처승의
분쟁으로 비구승을 이판승, 대처승을 사판승이라고 하였다. 비구승이 계
율과 수행을 중시하는 것에 반하여 대처승들은 처자를 거느리고 사찰의
운영에 많이 관여했기 때문이다. 이판승과 사판승이 서로 분열 반목하게
되고 이 이판승과 사판승의 분쟁상황이 그대로 국민들에게 부정적 이미
지를 심어주지 않았나하는 생각이다. 그 결과 민초들은 뾰족한 대안이
없을 때 무의식적으로 이판사판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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