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7-09 15:48
문화이야기 : 경복궁 1.
 글쓴이 : 오성대감
조회 : 3,744  

경복궁의 법전‧ 편전‧ 대전‧ 교태전! 

궁궐답사하는 방법은 두가지이다. 각 궁궐에는 궁궐해설사들이 배치돼어 있

는데 그들은 “이 건물은 언제
건조됐고.....”하는 식의 해설을 하는데 그 해설

에는 풍수와 음양오행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단편적인 내
용의 해설로 끝난

다. 답사 후 머리 속에 남는 내용이 거의 없다. 필자가 권하는 답사방법은 “궁

궐은 어떤
기준으로 무슨 용도의 건물이 배치됐고 풍수와 음양오행설에 의해

이러 저러한 이치에 의해 건조되었고,
특징은....”하는 식으로 기준을 알고 어

느 궁궐을 한번 보면 나머지 궁궐도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은 왕과 왕비만 쓰는 건물인데 경복궁 함원전은 왕과 왕비가 쓰

지 않는 건물로써 왜 ‘전’이라는 명칭이 
붙었을까? 정답은 부처님을 모신 건

물이라 ‘전’인 것이다. 먼저 쓴 ‘경복궁의 풍수’라는 글에 보면 경회루
라는 연

못을 왜 만들었으며 인공섬을 사각형으로 만들고, 섬의 숫자가 두 개인지 등

등 이렇게 관련된 풍
수를 알고 보면 쉽게 이해되고 잊혀지지 않는다. 

 

조선은 유교성리학을 국가통치이념으로 삼은 법치국가라 하지만, 실제로는

유교의 최대 덕목인 예를 기
본으로 하는 예치국가라 말할 수 있다. 국가의

중요한 조직 중에 ‘예조’가 있을 정도의 예치가 중요했다.

나라에서 정한 다섯가지 큰 예법인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가 궁궐의 법전

앞의 조정(朝廷)에서 행해졌
다. 외국사신을 영접하는 빈례(賓禮), 왕과 왕세

자의 결혼인 가례(嘉禮), 나라의 큰 제사인 길례(吉禮), 왕
이나 왕비의 국상인

흉례(凶禮)의 다섯가지이다. 이 모든 의식이 아무 곳에서나 행해지는 것이 아

니고 격
에 맞는 건물에서 진행하여야 했다. 즉, 건물도 격이 있다. 건물에도

‘예’의 개념이 있는 것이다.

 

건물의 격이 전(殿)․ 당(堂)․ 합(閤)․ 각(閣)․ 재(齋)․ 헌(軒)․ 루(樓)․ 정(亭)의

순서로 나뉜다. 각 건물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누가 사용하느냐 어느 용도

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구분이 확실해진다.

 

1. 전(殿) : 경복궁의 정치공간인 근정전, 사정전, 창덕궁의 인정전, 창경궁의

    명정전. 왕과 왕비의 침전인 
강녕전과 교태전, 사찰의 부처님이 계신 대웅

    전, 비로전, 대적광전, 무량수전등. 종묘의 정전, 영녕전. 경
복궁의 부처님

   을 모신 함원전.

2. 당(堂) : 경복궁의 세자의 침전인 자선당. 사찰의 조사당. 대비가 거처하던

    자경당

3. 합(閤) : 경복궁의 곤녕합(명성황후 민씨가 시해된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

4. 각(閣) : 세자의 편전인 경복궁의 비현각, 정조가 설치한 창덕궁 규장각.

   물시계가 설치된 흠경각. 사찰의 산신각.

5. 재(齋) : 왕의 서재인 경복궁의 집옥재. 창경궁의 낙선재

6. 헌(軒) : 왕의 집무공간이던 창덕궁의 관물헌, 각 지방의 동헌(동헌은 지방

   수령이 근무하지만 왕의 상
징인 궐패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격이 생각보   

   다 높다).

7. 루(樓) : 왕의 연회공간인 경회루.

8. 정(亭) : 왕비의 휴식공간인 향원정.

 

  본 글의 내용에서 잠깐 벗어나는 얘기이지만 위 건물의 사례를 보면 왕과

  부처님은 거의 같은 격으로 보여
진다. 조선은 고려말 불교와 승려들의 폐해

  때문에 숭유억불정책을 썼다고 하지만 불교를 대체할 종교
가 없었고 왕비

  나 대비들이 불교를 숭상했기에 실제로는 경복궁 함원전에 부처님을 모실

  정도로 사대부
나 왕실의 비호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궁궐에는 법전과 편전 그리고 대전이 있다. 법전으로는 경복궁 근정전, 창

  덕궁 인정전, 창경궁 명정전,
경희궁 숭정전, 덕수궁 중화전이 있고 편전으

  로  경복궁 사정전, 창덕궁 선정전, 창경궁 문정전, 경희궁 자
정전, 덕수궁

  덕흥전이 있고 경복궁 강녕전, 창덕궁 희정당, 창경궁 환경전, 덕수궁 함녕

  전이 있다. 법전과
편전이 모두 ‘○정전’인 것은 그곳이 정치를 하는 공간을

   나타내는 것이고, 덕수궁만 중화전인 것은 대한
제국을 선포하여 제후국 조

  선이 아닌 황제의 나라로 바뀌었기 때문에 자금성의 태화전․ 보화전․ 중화

  전처
럼 중화전이란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국조오례의가 행해진 법전인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

궁  인정전은 가장 격이 높은 건
물로써 다른 건물과 다르게 석재로 높게 쌓은

 2단의 월대 위에 설치되어 있다. 조상신을 모신 종묘의 정전
과 영녕전도 2단

의 월대 위에 설치되어 있다.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을 비롯하여 다른 건물들

은 월대가
없다. 답사할 때 자세하게 살펴보기 바란다. 

천자의 궁전인 중국 자금성의 정전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은 3단의 월대가

있다. 제후인 조선 임금의 월
대는 2단 월대로 해야 했고 만약 이를 어기면 천

자를 능멸하는 엄청난 죄를 짓는 것이다. 이처럼 유교는
여러 부분에서 예를

중요시 했다. 건물을 어떻게 짓느냐는 기준은 천여년 전에 주나라의 '주례고

공기'라는
책에 규정이 되어 있다. 천자의 나라는 월대 3단에 오문삼조, 제후

의 나라는 2단 월대에 삼문 삼조.... 이런
식이다. 경복궁은 자금성보다 십여

년 전에 지어 졌으니 자금성이 경복궁을 복사했느니 하는 얘기는 근거
없는

낭설이다. 주례고공기가 기준이다.

 

이런 건물의 격의 차이에서 폐하, 전하, 각하, 합하라는 호칭이 생겼다. 각하

는 원래 중국에서 대신들이 집
무보던 건물이 ‘각’이어서 대신들에게 붙이는

호칭이었으며 근세 일본에서는 칙임관이상의 문관이나 소
장이상의 무관에게

붙이는 호칭이다.  군사정권 시절에 대통령을 각하라고 부른 것은 잘못되지

않았나 한다.

 

삼문삼조는 문 세 개를 지나야 임금이 있는 법전에 도착할 수 있다는 의미이

다. 경복궁은 광화문과 흥례
문 그리고 근정문을 지나야 하고, 창덕궁은 돈화

문과 진선문 그리고 인정문을 지나야 인정전에 도달한다.

그런데 창경궁은 홍화문과 명정문을 지나면 바로 명정전이다. 이유는 창경궁

이 법궁으로 건조된 것이 아
니고 대비들을 위한 별도의 궁궐이기 때문이다.

창경궁을 만든 임금은 성종이다. ‘왕위는 적장자 우선’이
라는 원칙이 무너져

서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즉위한 성종에게는 대비, 왕대비, 대왕대비의 세

분의 대비
가 있었고, 이 대비들을 위한 궁이 창경궁이다. 문종부터 성종까지

의 왕위 계승과정은 내용이 많기 때문
에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문종, 단종,

세조, 의경세자(후에 덕종으로 추존됨), 월산대군, 해양대군(예종), 제
안대군,

자을산군(성종), 한명회, 성종의 친모인 인수대비(예전에 '인수대비'라는 연

속극이 있었다),

예종 비인 왕대비 안
순왕후, 세조의 왕비인 대왕대비 정희왕후등이 얽히고

얽혔던 사연 많았던 역사의 장소가 창경궁이다.

 

삼조란 외조․ 치조․ 연조를 말한다. 외조란 신하들이 집무하던 궐내각사가 있

던 공간이고, 치조는 왕과 신
하가 만나서 정치하는 공간이며, 연조는 왕과 왕

실가족의 생활공간이다.

 

광화문을 지나면 금천교인 영제교를 건너야 한다. 금천교는 보통명사로써 왕

릉에도 있다. 영제교는 고유
명사이다. 수원 융건릉의 금천교 이름은 원대 황

교이다. 밖에서 볼 때는
금할 禁자를 쓰는 禁川橋, 안에서 볼 때는 비단

錦자를 쓰는 錦川橋의 두가지를 동시에 사용한다.
물을 건너면서 안좋은

것들을
씻어 버린다는 의미가 있다. 禁川은 단어 뜻대로 건너가는 것을

금하는 다리라는 뜻이며, 금천교
건너편은 특별한 장소로써 왕이 머무는
신성 한 영역임을 표현한 것으로 물이 흐르지 않는 곳에도
설치하여 중

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부분이다. 또한 왕비가 부모의 상을 당하면 친가

에 가지 못하
고 금천교까지만 나올 수 있는 경계선이다. 왕명을 받는 승

지들이 처음에 부임하여 보름간 궁에 있
으면서 나올 수 있는 경계선으로
쓰이기도 했다. 경복궁 영제교에 4마리의 벽사동물 상이 있는데
그 동물

의 종류는 천록이다. 어느 궁해설사는 해태라고 잘못 설명하는데 모양이
다르다. 광화문 앞
에 있는 것이 해태(해치 : 해태와 해치는 같음)이다.

 

외조는 신하들이 업무를 보는 공간으로 궐내각사가 있다. 궐내각사는 왕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왕명을
받는 승지들이 근무하는 승정원․ 외교문서를

담당하는 승문원․ 왕의 자문을 맡는 홍문관․ 왕의 글을 맡는
예문관․ 역사기

록을 맡는 춘추관등이다. 연속극에서 임금이 “영의정을 들라 하라 또는 예조

판서 입궐하
라”는 명을 내리는 장면을 생각해 보면 궐내각사와 궐외각사를

대략 구분할 수 있다. 지금의 광화문 거리
가 궐외각사가 있던 육조거리인 의

정부와 육조, 사헌부, 한성부등이 있던 자리이다. 정문인 광화문을 지
나면 궐

내각사로 들어가는 유화문이 왼쪽에 있다. 유화문 옆에 작은 건물인 ‘기별

청’이 있다. 기별이란 왕
명을 출납하는 승정원에서 국정에 관한 소식인 기별

을 작성하던 곳으로, 여기에서 ‘기별이 갔느냐’ 라든
가 ‘(음식을 조금 먹으니)

간에 기별도 없다’는 표현이 생겼다. 궐내각사는 지금의 청와대 안에 있는 조

직
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치조는 임금과 신하들이 모여서 정치를 논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건물이름에

‘정(政)’자가 들어간다. 경복
궁의 근정전‧ 사정전‧ 창덕궁의 인정전‧ 창경

궁의 명정전등이고 그 중 근정전과 인정전은 국조오례의에
해당하는 국가 공

식행사가 진행되는 법전이며, 평소에는 편전인 사정전․ 선정전에서 정치를

했다.

  근정전 월대에는 황룡과 사신도 그리고 12지신상과 사자와 벽사동물인 서

수등이 네방향에 있다. 답사할
경우 확인 바란다. 좌청룡 우백호 전주작 현무

가 맞는지, 황룡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근정전 뜰 바닥에
있는 박석의 산지를 찾으려고  문화재청에서 몇년동안

노력한 끝에 '강화도 옆의 석모도가 산지이다'라고
발표했다. 홍제동에서 구

파발로 가는 방향의 고개이름이 박석고개이다. 조선시대부터 박석이 깔려 있

어
서 박석고개라 불렀다. 동국여지승람에 '강화도 옆 매도라는 섬에서 나는

화강암 박석은 질이 좋아 국가
에서 관리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 매도가 석

모도이고, 두께 10Cm정도의 박석은 종묘의 정전과 영녕전,
왕릉의 참도, 궁

궐의 주요한 전각의 마당등 중요한 장소의 바닥에 까는 석재이다.   1960년대

까지 구들장으로 많이 사용할 때  석모도에 석공이 100여명 있었다고 한다. 

 

연조는 왕과 가족의 생활공간이다. 왕의 침전이자 거처이며 정사도 보던 대

전인 강녕전(康寧殿)은 건강할
강, 안녕할 녕의 뜻이다. 즉 왕이 침전에서 편

안하게 주무셔서 건강하고 안녕한 것이 국가의 제일 중요한
점이라는 것을

기원하는 이름을 붙였다. 강녕전의 문이름은 향오문(嚮五門)이며 음양오행의

중앙으로 주
변 건물이 모두 5채이다. 5채인 것은 바로 오행의 중앙으로써 강

녕전이 있는 것이다. 향오문의 기둥은 모
두 사각형 기둥이다. 선정문의 기둥

은 둥근 원형기둥이다. 기둥모양의 차이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하
나는 음

양이고 또 하나는 건물의 격에 따른 차이이다. 선정전은 정치를 하는 움직임

이 많은 동적인 공간
으로 양의 성질이라 원형이고, 강녕전은 침전으로써 정

적인 공간으로 음의 표현인 사각형기둥을 썼다.



  경
회루 연못을 사각형으로 만들어 음을 상징하듯 사각형은 음이다. 두 번

째, 원형기둥은 왕과 관련된 건물
이나 부처님이 계신 사찰에만 사용할 수 있

고 사대부를 포함한 백성들은 사용하지 못하게 법으로 금했
다. 단청도 왕실

과 사찰에만 사용할 수 있게 격을 두었다. 조선시대에 지은 양반집 종가를 가

보면 단청도
없고 둥근 기둥도 없다. 참고로 경복궁의 침전은 3침이고 자금성

은 6침이다. 침전이 3개있다는 의미이다. 
보안 문제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왕비의 침전은 교태전(交泰殿)이고 문의 이름은 양의문(兩儀門)이다. 양의란

‘음양오행이란...’ 글에서 밝
혔듯이 음양을 표현하는 글자이며 교태란 음양이

잘 조화되어 큰 사람인 태자를 생산하는 곳이라는 의미
이다. 한자의 泰와 太

는 모두 크다는 뜻이다. 교태전을 중궁전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중궁전을 줄

여 ‘
전’이라 부르며 왕비를 중전마마라고 하는 것은 왕을 전하라 부르는 것처

럼 건물의 주인을 부르는 호칭
이다.
 


  세자가 있는 건물은 궁궐의 동쪽에 있고 동쪽은 새 기운이 돋아나는 봄이라

서 동궁이라 부르며, 세
자를 동궁마마라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풍수상

경복궁 안에서 생기가 가장 좋은 자리가 바로 교태
전 위치이며.  태자를 잘

생산하라는 이름으로 ‘교태전’이라 지었던 것이다.

 

강녕전과 교태전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살펴보자. 같은 점은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지붕이다. 한옥 지붕
의 종류 중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팔짝지붕은

모두 용마루가 있는데 강녕전과 교태전에 용마루가 없는
이유는 왕을 용이라

했기 때문에 용 위에 다른 용이 있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왕이 앉는 자리를

용상, 옷
을 용포라 한다. 다른 점은 강녕전은 월대 위에 있고 교태전은 월대

가 없다. 강녕전은 정면 9칸 측면 5칸
인데 교태전은 정면 7칸 측면 4칸이다.

강녕전은 부속 건물이 있고 교태전은 없는데 이는 왕과 왕비의 격
이 틀리려

서 차이를 둔 것이기도 하지만, 강녕전이 내전에서 가장 큰 건물이라 대전이

라 부르기도 하면서
정사도 봤던 건물로써 주변에 부속건물이 필요했던 것이

다. 강녕전의 굴뚝은 교태전의 양의문 담에 있고,
교태전 굴뚝은 아미산에 있

는데 굴뚝이라고 여기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운 건축물로써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교태전 뒤에는 아미산이라는 조그만 동산이 있다. 풍수에서는 백두산의 생기

가 용맥과 지맥을 타고 혈에
서 생기가 터진다고 하며, 혈의 위치 앞에는 반드

시 ‘잉(孕 ~ 배부를 잉, 아이밸 잉)’이라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아미산이 교

태전이라는 혈 앞에 있는 잉이다. 조선 왕릉을 답사해 보면 능침의 곡장 뒤에

는 배가 볼
록하게 부른 것 같은 잉이 반드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풍수의 혈

은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과 같다고
현한다. 아기가 나오는 자궁문 위치가 혈

이고 아기에게 기를 넣어주는 부분인 잉을 혈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미

산에는 기암괴석이 있는데 이는 도교의 영향으로 신선이 살고 있는 이상향이

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여자들의 공간을 아기자기하게 꾸며준 배려인 것 같

다.

 다음에는 자경당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