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7-09 15:46
문화이야기 : 한양의 사대문
 글쓴이 : 오성대감
조회 : 4,127  

한양의 사대문 이름은 어떻게 붙였을까?

  사대문을 부르는 방법은 두가지로써 보통명사로 부를 때는 동대문ㆍ서

대문ㆍ남대문ㆍ북대문이며,
고유명사로 부를 때는 흥인지문ㆍ돈의문ㆍ숭

례문ㆍ소지문으로 부른다. 보통명사인 남대문은 평양에
도 있고 개성에도

있다.

 

한양에 도읍을 정한 조선의 건국이념은 유교이며, 한양의 도시계획은 유

교이념에 근거를 두고 있
다. 유교에서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의 5가지 기본적 덕목을 오상(五常)이라고
하는 사람이 항상 지켜

야 할 5가지 도리를 말하며 오륜(五倫)과 함께 유교윤리의 근본을 이룬

다.

 

음양오행의 오행은 ‘동‧ 서‧ 남‧ 북‧ 중앙’의 방위와 대응되며

‘인‧ 의‧ 예‧ 지‧ 신’으로 대응이 된
다. 즉, 오행과 오상은 같이

볼 수 있다.

한양의 사대문의 이름은 바로 이 오상의 개념으로 작명했다.동쪽인 흥仁

지문
, 서쪽의 돈義문, 남쪽의 숭禮문이다. 북쪽의 소智문이다.

 

 

1. 숭례문

방화때문에 지금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숭례문은 남쪽에 위치한 한

양의 정문으로써 국보1호로
지정된 가잔 큰 문이다. 지난 번 글인 ‘경

복궁의 풍수’에서 언급했듯이 남주작 관악산의 화기를
억누르려는 비보

책으로 숭례문이라는 글씨는 다른 문과 달리 현판이 세로로 써 있다.

숭례문은 1905년 을사조약 후 조선 점령군 사령관인 하세가와 요시미치(長

谷川好道)가 “그런 낡아빠진
(남대)문은 파괴해버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남대문은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입성한
문이다. 파괴해서

는 안된다. 동대문 역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입성했다”라며 일본의

승전기념물
이라는 의미를 부여해서 철거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

황태자가 숭례문을 통과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강제로 허물어 버리려

고 하였으나 그때 성문은 없애지 못하고 숭례문의 좌우에 딸린
성벽을

부수고 새로 길을 내고 말았다. 그래서 숭례문은 웅장한 모습을 잃고 좌

우의 날개가 없어진
새처럼 외로운 모습이 되었었으며, 숭례문화재 이후

복원할 때 일부의 성곽이나마 모습을 보게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2.흥인지문

흥인지문은 한양의 동쪽에 위치한 문으로서 오행의 인(仁)에 해당하며

보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
다. 이 곳은 주변 지역보다 낮고, 청계천이 흘

러내려 가는 지점과 가까워 성곽과 문을 만들기가 어
려웠고, 기가 약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비보풍수로써 글자 하나를 더 써넣어 다른 문과 다

르게 4글
자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풍수에서 좌청룡은 자손에 해당하

며 우백호는 재물에 해당한다고 한다.

한양 도성의 좌청룡인 낙산
은 우백호인 인왕산에 비해 산의 지세가 너무

나 약해 자손의 번창을 위해 비보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동대문을 비보(풍수에서 약한 곳의 기를 보충한다는 의미)하고자

문의 이름에 좌청룡의 힘
을 북돋우기 위해서 용이 꿈틀거리는 모양의 글

자인
갈 지(之)를 한 글자 추가시켰으며 그것도자라 흥인지문의 바깥 쪽

에 반원모양의 옹성을 둘렀는데 이것 역시 같은 의미로 용의 입에 여의

주
를 만들어 주어 기를 보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비보의 방편으로 옹

성을 쌓은 점은 한양의 다른
문에서는 볼 수 없고, 수원화성의 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등에서 옹성을 볼 수 있다.

 

3. 일제가 없애버린 돈의문

돈의문(敦義門)은 서울 성곽의 4대문 가운데 서쪽 큰 문으로 서대문(西

大門) 또는 새문‧ 신문(新門)
이라고도 한다. 1396년(태조 5) 한양 도성

(都城)의 제2차 공사가 끝나고 8대문이 완성되던 때 처음
세워졌지만

1413년(태종 13)에 폐쇄되고 그 대신 그 북쪽에 서전문(西箭門)을 새로

지어 출입케
였다가 1422년(세종 4) 다시 서전문을 헐고 돈의문을 수리

하였다. 이때 돈의문의 위치를 조금 남쪽
으로 옮겨서 새로 지었기 때문

에 흔히 새문 또는 신문이라 불렀다. 그래서 돈의문 안쪽을 새문안,
그리

로 통하는 길을 새문안길 또는 신문로라 불렀다. 새문안길은 광화문 로

터리에서 아현동 방향으
로 완만한 오르막길로 고개를 만들고 서대문 로

터리로 내리막길인데 그 고개마루가 바로 '새문' 곧
돈의문이 있었던 자

리이다. 지금의 강북삼성병원이나 경향신문사옥 근처로 추정이 된다.

1915년 일
제의 도시계획에 따른 도로확장 공사로 인해 완전히 철거되고

말았다. 참 아쉬운 역사의 한 단면이
다.

 

4. 소지문 (숙정문으로 이름이 바뀜) 

도성의 북문인 소지문(昭智門)은 태조 때 이름이 숙청문(肅淸門)으로 바

뀌었다. 숙청문은 경복궁의
두 팔에 해당되므로 길을 내지 말고 지맥을

보존해야 한다는 풍수가의 주장에 따라 태종 13년에 폐
쇄하였다. 풍수적

으로 북쪽은 북망산을 의미하기에 항상 문도 닫었고 이 때부터 숙청문은

평상시에
는 늘 닫혀 있었다. 숙정문을 나가도 외부로 연결되는 길이 없

는 지형에 위치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통행을 위한 문이라기 보다는 도

성에 동서남북 사대문을 내는 데 구색을 갖추기 위해 지은 문이라
고 보

여진다.

 

숙청문이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숙정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7세기

이후 숙청문과 숙정문이 뒤
섞여 불리다가 공식적인 기록에는 숙정문으로

나오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가뭄이 심해지면 남주작에 해당하는 숭례문을 닫아 화기를

누르고 북현무에 해당하는
숙정문을 열어 ‘음’과 ‘수’의 기운을 북

돋아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고자 했다.  

지금 우라가 보는 숙정문은 1976년 성곽을 복원하면서 새로 문루를 짓고

'숙정문'이란 편액을 걸은
것이다.

 

5. 오상 가운데 신(信)은 어디에 있을까?

 

사대문의 중앙에 있는 종각이 바로 보신(信)각이다. 동쪽의 인‧ 서쪽의

의‧ 남쪽의 예‧ 북쪽의 지 그리
고 중앙의 신이다. 사대문의 역할은 출

입을 통제하는 목적이 있었고 보신각에서 울리는 종소리인
인정과 파루

로 기준을 삼아 대문을 열고 닫는 기준을 삼았다. 북대문인 숙정문은 풍

수적인 이유로
평상 시에 닫아 두었었고, 나머지 문은 새벽 4시경(파루)

에 종 33번을 치면 열고 저녁 10시(인정
또는 인경)에 종 28번이 울리면

4대문의 문을 일제히 닫아 외부와의 통행을 막는 한편, 성내에서도
통행

이 금지되었다.

 

인정에 28번의 종을 울리는 것은 우주의 일월성신(日月星辰) 28수(宿)에

고
하여 밤 사이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고, 파루에 33번의 종을 울리는 것

은 제석천(帝釋天)이 관할하는 하늘인 33천(天)에 고
하여 오늘 하루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불교 최고의 수호신인 제석천은 인간세

계와 부
처의 세계의 사이에 있는 28개 하늘 중 2번째 도리천의 주인으로

도리천의 33성을 관할하면서 인간
세계의 모든 선행과 악행을 다루며 사

바세계를 다스린다. 제석천에게 알리는 종이 파루이다. 33성
으로 도리천

이 되어 있기 때문에 천상계를 33천이라고 하고, 33이라는 숫자는 사바

세계에서 부처의
나라인 불국세계로 가는 길목을 의미한다. 또 같은 의

미의 33이라는 숫자는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
교의 계단이 바로 33계단인

것을 볼 수 있다.

 

새해 첫날 보신각에서 치는 종도 같은 의미로 33번을 타종한다. 이

때‘제야의 종’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새로운 해의 안녕을 기원

하는 의식인데 지나버린 시점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잘
못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