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7-09 14:46
궁궐과 풍수 1
 글쓴이 : 오성대감
조회 : 4,191  

조선시대의 국가통치이념은 유교에 의한 법치라고 분명히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실이 있었다.
우스개 소리로 조선 유학자들은 낮에는 유

교를 논하고, 밤에는 풍수지리를 논한다는 말이 있다. 자
신과 가문의 영

광을 위하여 풍수를 무시할 수 없고 풍수에 매달리는 겉과 속이 다른 유

학자들이 많
던 사회가 조선이었다. 공식적으로 풍수를 표면에 내세우지

는 못했지만 내부적으로는 큰 영향을 끼
쳤던 것이 풍수이었다. 그래서

궁궐과 왕릉을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는 풍수지리를 이해하여야 한
다.

 

풍수에서는 모든 땅의 기운은 두가지 특징이 있다고 한다. 첫째, 바람을

만나면 기운이 흩어지는
풍즉산(風則散)과 두 번째로 물을 만나면 기운

이 멈춘다는
계수즉지(界水則止)이다. 좋은 기운이 흩어지지 않게 산으

로 둘러싸서 바람을 가두는
장풍(藏風)과 좋은 기운이 새어나가지 못하

게 물길
을 얻는다는 득수(得水)에서 풍수라는 말이 생겼다. 즉, 바람과

물로 땅의 이치를 아는 것이 풍수
의 뜻이다.

 

중국 풍수는 단순하게 좋은 땅을 찾는 풍수이고, 우리 풍수에는 중국과

달리 나쁜 땅을 좋은 땅으
로 바꾸려는 특징인 ‘비보(裨補)풍수’의 특

징이 있다. 비보풍수의 방법으로는 숲을 가꾸어 홍수
와 바람을 막는 동

수비보, 연못이나 해치상을 설치하여 화기를 막는 화기비보, 기운이 허

한 땅에
절과 탑을 세우는 산천비보, 땅이름을 조화롭게 지어 좋은 기운

을 잡아두려는 지명비보 등이 있다.

조선궁궐에는 비보책을 쓴 것이 많다. 궁궐을 이해할 때 정확하게 이해

하는 방법은 그 시절로 돌아
가서 그 당시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

 

조선시대에는 경복궁‧ 경희궁‧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덕수궁)의 5

대 궁궐이 있다. 5개 궁궐 이외에
도 더 많은 궁궐이 있었다. 정궁인 경

복궁 뿐만 아니라 이궁‧ 별궁‧ 행궁 등 그 쓰임새에 따라 여러
궁궐이

있었다. 우선 이궁(離宮)은 정궁에 화재‧ 질병 또는 각종 변란이 있어

서 임금이 거처하지 못
할 상황이 될 때 임시로 사용하는 궁궐로써 창덕

궁이 대표적인 이궁이다. 별궁(別宮)은 특별히 따
로 지은 궁궐로써 왕이

나 왕세자의 혼례 때 왕비나 세자비를 맞아 들이던 궁궐이다. 행궁(行

宮)은
임금이 먼 곳으로 거동할 때 머무는 별궁으로써 온양행궁이나 수

원행궁등이 있다. 온양행궁은 임금
이 온양온천에 온천욕을 하러 갈 때,

수원행궁은 정조임금이 친부인 장조(사도세자)의 릉에 참배하
러 갈 때

머무르던 곳이다. 또한 왕이 되기 전의 어릴 때 자란 사가를 가르키는

말로 잠저라고 부
르지만 궁으로 불린 곳이 있다. 고종의 생가이며 대원

군이 거처하던 사가(私家)를 운현궁이라 불렀
다.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正宮)이며 법궁(法宮)이다. 정궁 또는 법궁은 여러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

는 궁궐이며 법적으로 핵심 궁궐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경복궁의 위치를 정할 때 하륜은 지금의

연희동부근을 추천했고 무학대사는 인왕산 밑에 동향을 보는 위치를 추천했지만 정도전이 추천한

현재의 위치에 경복궁을 건조하게 된다.

 

 

조선의 태조는 1392년 7월 개성의 수창궁에서 왕위에 즉위하여 조선을 건국 하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왕궁을 건조하기 시작하여 태조4 년 (1395년) 9월에 경복궁이 조성되었다.

 

조선 궁궐을 이해하려면 풍수와 음양오행이 기본으로 반영된 점을 알아야 한다. 정도전이 추천한

경복궁 자리에 대하여 풍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반대를 했다. 한양의 전주작인 관악산은 바위가

많은 산이다. 음양오행의 남쪽으로 뜨거운 불의 상징인 남주작의 화기가 무척 강하기 때문에 경복

궁 자리에 궁궐을 지으면, 관악산의 화기로 인하여 반드시 큰 화재가 일어날 것이라고 반대를 했

다. 정도전은 나쁜 기운을 막는 세가지의 화기비보책을 거론했다. 한강의 많은 강물이 1차로 불기

운을 차단해 주고,두 번째로 숭례문의 현판을 세로로 세워 달았다. 현판은 보통 가로로 다는 것이

원칙인데 일부러 세로로 달았고 현판글씨도 불이 타는 것 처럼 끝을 뾰쪽뾰족하게 썼다. 한양의

남주작에 해당하는 숭례문은 불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대문이니 관악산 화기에 대해 맞불을 놓은

것처럼 한 것이다. 세번째 비보책은 광화문 앞에 불을 먹고 산다는 해치상을 세웠다.

 

 

경회루는 어떤 원리로 지었을까?

고종 때 정학순이 쓴 경회루서 라는 책에 설명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림이 있다. ‘경회루36궁지

도’라는 경회루의 설계도이다. 바깥쪽 기둥 24개에는 24절기가 모두 쓰여져 있고 가운데 네모 안

에는 1월부터 12월까지가 쓰여 있다. 자축인묘인 12지와 갑을병정의 10간과 건곤감리의 8괘도 표시

되어 있다. 경회루를 보면 정면이 7칸, 측면이 5칸인 35칸 건물임에도 36궁이라 불렀다. 그런데

‘경회루서’라는 책에는 "지붕은 태극이라 불리는 모양을 얻게되니 그것을 하나로 보느니라" 라고

해서 36궁이라 불렀는데 설계에 반영된 주역의 8괘의 숫자를 모두 더한 36과 같다.

1+2+3+4+5+6+7+8=36 이외에도 ‘경회루서’에는 36이라는 숫자와 관련된 설명이 더 많이 나오는데

모두 주역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경회루는 모든 동양사상을 함축적으로 넣어서 설계를 했다는 점을

이해하자. 경회루에서 동양사상인 음양이 잘 조화된 것의 대표적인 것이 기둥이다. 바깥쪽의 기둥

은 음을 상징하는 네모기둥이고 안쪽의 기둥은 양을 상징하는 둥근기둥이다. 마치 근정전의 행각에

있던 기둥의 주춧돌도 안쪽인 마당쪽이 둥근 주춧돌, 바깥쪽인 벽쪽이 네모난 주춧돌인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이처럼 동양사상은 원리만 알면 다른 것도 쉽게 알 수 있다. 음양은 상대적인 개념이지

어느 쪽이 절대로 좋고 다른 쪽은 나쁘다는 절대적 개념이 아니다.

 

경복궁의 비보책은?

 

풍수에는 좋은 기운인 생기(生氣)와 나쁜 기운인 사기(死氣)가 있고, 사기 중에 나쁜 기운을 살

(煞)이라고 한다. 살(煞)은 죽인다는 뜻이며, 살 중에 서 가장 나쁘다는 황천살이 경복궁의 동남향

에서 들어와서 혈육상쟁이 계 속 벌어진다고 하여 동남향 비보책으로 소나무를 많이 심었고 그 지

명을 수송동, 송현동이라 하였다.

 

경복궁의 우백호인 인왕산에는 치마바위라고도 불리는 큰 바위가 있다.푹신푹신한 흙산은 포근함을

느끼는데 큰 바위는 좋지 않은 느낌의 나쁜 기운인 산살(山煞)이라 한다. 인왕산의 바위덩어리에서

날아오는 산살(山煞)의 살기(煞氣)가 경회루의 연못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고, 그 그늘에 건물이 있

으면 산살을 받지 않아서 좋게 된다고 여겼다. 그것을 풍수에서는 안보이게 하면 나쁜 기운에 대하

여 비보가 된다는 것을 불견(不見)처리라고 한다. 그 위치가 바로 임금과 왕비의 침전인 강녕전과

교태전이며 이 두 건물은 불견처리라는 비보에 의해 나쁜 기운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회루는 건물 전체가 음양의 “음”이다. 즉, 음의 상징으로써 의도적으로 만들었다. 동양에서는

‘천원지방’이라 하여 하늘은 양으로써 둥글고, 땅은 음으로써 사각형이라 하여 대부분의 인공 연

못의 테두리는 사각형 방지(方池)형태이고 연못 안의 섬은 둥글게 만들어 이상향을 의미하는 형태

로 만든다. 하지만 경회루는 섬도 사각형으로 만들어 음을 상징했다. 섬의 숫자도 음수인 짝수의

두 개다. 이십여년 전에 발견된 청동제 용도 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 당시 책에는 용을 음수인 

두 마리를 넣었다고 한다. 얼마 전에 발견된 경회루 상량문에 “물 아득할 묘(淼)”라는 글자

1,000개를 써서 용을 그려 넣었고 그 의미는 ‘이 경회루는 음인 물이 가득한 곳이니 나쁜 기운은

범접하지 말라’는 뜻으로 비보한 것이다. 풍수에서는 좋은 기운이든 나쁜 기운이든 물을 만나면

멈춘다고 한다. 즉, 계수즉지(界水則止)이다. 창덕궁의 낙선재 담이나 사대부 집의 담에 있는 벌집

형태의 연속된 무늬가 바로 묘(淼)자를 사용하여‘여기는 물의 세상이니 나쁜 기운은 범접하지 말

라’는 비보책이다. 이렇듯 조선 건축물의 무늬와 형태는 의미가 반드시 있고 그것을 알고 보면 답

사가 더욱 재미있다.

 

‘1박2일’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유흥준교수가 “인공연못인 경회루의 물길을 좋게 하려고 섬을

두개 만든 것 같다”라고 했는데, 섬이 없으면 물길은 더 좋아져서 물이 잘 흐른다는 점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위에서 설명했듯이 풍수와 음양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설명이 부족하

다. 이 점이 음양과 풍수를 인정하는 답사와 인정하지 않는 답사의 큰 차이이다. 풍수와 음양 없이

조선문화재에의 접근은 한계가 있고 정확하게 볼 수 없고 엉뚱한 오류를 낳게 된다. 본인은 풍수를

인정하면서 답사를 한다. 오늘의 내용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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