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불교가 퍼지기 시작하던 고대 불교는 불상이 없었다. 석가모니는
인도의 기존종교인 브라만교의 형식주의적인 제사 위주의 의식을 싫어했
기 때문에“내가 죽거든 나를 개인적으로 따르지 마라. 나는 길을 안내
하는 스승일 뿐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래서 초기 불교에서는 불상
을 모시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점차 흘러감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 속
에서 부처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수행의 강도가 약해지면서 무엇인가 신
앙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보리수나무를 조
각한다든지 부처가 앉았던 자리나 부처의 발자국을 조각하여 간접적인
숭배의 대상을 찾기도 했다. BC 522년 석가모니의 열반 후 불상이 최초
로 나타나는 AD 1세기까지 600여년 간은 불상이 없는 무불시대였다.
AD 2세기 알렉산더대왕이 서역으로 진출하면서 지금의 아프가니탄지역에
서 교류되던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처음으로 불상이 생기는데 그 특징
은 바로 서양인 그리이스인의 얼굴을 닮고 옷은 양어깨를 덮는 형태이
다. 그 이유는 아프가니스탄지역이 추운 지역이었기 때문이고, 이 때의
불상을 간다라불상이라 부른다. 약 50년 후에 나타나는 부처님의 의상은
인도 중부의 따뜻한 지역의 영향로 한쪽 어깨가 노출되는 형태이고 인도
인의 얼굴형태이다. 이 때의 불상을 인도 중부지역 이름인 미투라불상이
라 부른다.
우리나라에 철로 된 철불이 있다. 철불이 만들어 지던 시대는 고려 초기
이다. 사병을 많이 거느렸던 개국공신들의 힘을 약하게 하기 위하여 무
기에 쓰이던 철을 국가에서 징발하여 철불을 만들었기 때문이고, 그 시
기를 제외하면 철불을 만든 시기는 별로 없다.
탑은 부처의 무덤이다.
세계사 배울 때 이름을 많이 들어본 아소카대왕이 전쟁을 통해 인도의
수많은 군소왕국을 최초로 통일했다. 정복전쟁을 통해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고, 왕권다툼으로 인해 형제들까지 잔인하게 죽였던 아소카대왕은
불교에 귀의하여 속죄를 하고자 했다. AD 313년 밀라노칙령으로 콘스탄
틴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듯이 아소카대왕도 불교를 국교처럼 불교의 포
교에 앞장을 섰고, 그가 선택한 방법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담은 탑을 세
계 도처에 세우는 것이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아소카 대왕이 세운
탑이 8만4천개이었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부처의 사리를 “스투파”라고 하는 건축구조물에 넣었다.
이 스투파는 마치 우리나라의 무덤의 봉분과 매우 흡사하다. 스투파는
부처의 무덤인 셈이다. 이 스투파가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중국에서는 위
대하신 분을 그냥 무덤에만 모실 수가 없다고 하여 높은 전각을 만든 다
음 그 위에 봉분형태의 조그만 구조물을 만들어 그 안에 부처의 사리를
모셨다. 그리고 스투파를 한자로 표시하여 탑파라고 불렀다. 이 형태가
중국 탑의 시초이다.
이 탑파가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탑이라고 불리워지게 된다. 탑은 영어
로 타워가 아닌 파고다다. 종로2가에 있는 탑골공원을 파고다공원이라고
부르기도 한 기억이 난다. 파고다는 원래 중국,일본, 동남아시아에서 탑파
나 탑 모양으로 높이 지은 불교 사원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의 탑 모양은 높은 전각에 신경을 쓰다 보니 실제 그 위에 존재하던
무덤의 존재는 잊혀지고 여러 층의 구조물만 남게 되었다. 그래도 탑을
잘 살펴보면 맨 위에 무덤처럼 생긴 조그만 구조물이 있다. 그것을 복발
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이 바로 부처의 무덤이다. 그럼 사리가 그 복발 속
에 있을까? 아니다. 진신사리는 그 어느것 보다도 소중한 보물이기 때
문에 조그만 복발 속에 넣어두면 도난당할 위험이 많아 돌로 만든 탑의
깊숙한 곳에 사리를 넣어 둔다.
처음의 목탑은 석탑으로 바뀌고 고려시를 지나면서 크기도 점점 작아진
다. 규모가 큰 탑은 오래된 탑이라고 여기면 맞다. 백제의 미륵사지 석
탑이나 분황사 석탑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벽돌형태의 돌을 쌓은 전탑으
로 크기가 크다. 유일하게 남은 큰 목탑이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이다.
몽고군에 의해 불타없어진 황룡사목탑도 그 주춧돌로 미루어 보면 엄청
나게 큰 목탑이었다. 책에 전해지듯이 신라의 기술로 못 만들어 백제의
장인을 모셔와서 만들었다는 그 탑! 너무 아쉽다.
사찰에서 흔히 쉽게 지나치는 것이 석등이다. 석등은 단순한 장식적인
구조물이 아닌 엄청난 뜻이 있는 석물이다.
석등의 형태는 땅에 붙어 있는 기반석 위에 연꽃이 덮고 있으며, 8각형
의 기둥이 있고 그 위에 하늘로 향한 연꽃이 새겨져 있고, 연꽃위에 불
을 밝히는 화사석과 창문4개가 새겨져 있으며, 맨 위에 덮개와 장식이 올라간다.
불가에서는 무지의 세계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일반중생들이 부처와
깨달음의 세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진리의 등불이다. 그런데 왜 화창
은 항상 4개일까? 그것은 불교에서 보는 진리는 4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를 사성제(四聖諦) 또는 사제(四聖諦)라고 부른다. 즉 진리가 4개이므로
불빛이 4개인 것이다.
사성제는 고집멸도이다. 인생의 참모습은 괴로움이라는 고제(苦諦), 괴
로움은 집착으로부터 나온다는 집제(集諦), 해탈을 위해서는 집착을 완
전하게 없애는 끊임없는 수도를 해야한다는 도제(道諦)의 네가지 진리이
다. 끊임없는 수도를 통해 집착을 없애면 괴로움이 없어진다는 진리이다.
그럼 8각형기둥은 무슨 뜻일까?
8각기둥은 수도를 위한 방법으로 8정도(八正道)를 나타내고 있다. 고통
을 소멸하는 참된 진리인 8가지 덕목은 올바로 보는 정견(正見),올바로
생각하는 정사(正思:正思惟), 올바로 말하는 정어(正語), 올바로 행동하
는 정업(正業), 올바로 목숨을 유지하는 정명(正命),올바로 부지런히 노
력하는 정근(正勤:正精進), 올바로 기억하고 생각하는 정념(正念),올바
로 마음을 안정하는 정정(正定)이다.
시간나면 다시 불국사를 갈 예정이다. 어릴 때 아무 생각없이 보던 불국
사와 지금 보는 불국사는 분명하게 틀리다. 지금부터 무척 설레인다. 갔
다온 후 불국사에 대해 다시 글을 올릴 예정이다. 예를 들어 “극락전의
계단은 48계단이다. 바로 아미타여래가 48가지 서원을 했다는 그 내용을
형상화 한 계단이다”라든가, 모형을 보겠지만 석굴암에 깃들어 있는 이
야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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