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5-09-04 18:29
꿈 같은 산행을 마치고
 글쓴이 : 박명흠
조회 : 3,089  
    누구 누구는 누구 차에 타고 그 차는 어느 도로로 이동, 어느 휴게소에서 만난다. 마치 군사 작전이라도 하는 것처럼 우리는 계획대로 문막 휴게소에서 모두 합류했다. 커피와 간담한 담소를 나눈 후, 각자 타고 온 차로 설악산으로 이동했다. 소공원에 도착하니 새벽 2시가 좀 못 되었다. 이 때 준곤 형으로부터 명령이 떨어진다. “지금부터 모든 행동은 등반대장의 지시에 따른다.” 기원이를 빼면 내가 제일 아래이니 최고 쫄다구가 대장이 된 셈이다.
    공동 짐을 배분했다. 동준이 형이 공동 장비인 듯 가지고 온 물건을 꺼냈다. “이거 꼭 한 잔하고 잡시다” 시바스 리갈 2병 이다. “대장이 허락하면……” 누군가가 말씀하셨다. 비선대로 향했다. 새벽 공기는 비가 올 것 같이 더웠지만 하늘에는 별빛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밤길이라 그런지 걸음걸이는 무척 빨랐고 35분만에 비선대에 도착했다. 불은 켜져 있었지만 너무나 조용했다. 테라스로 난 문으로 들어가 각자 잘 자리를 마련하였고, 자기 전에 모두 모여 시바스 리갈과 준곤형이 가져온 조니워커를 몇 잔씩 마셨다. 3시 20분이다. 조금씩 눈을 붙이고 5시 30분에 일어나기로 했다.
    5시10분에 기원이와 식사준비 때문에 먼저 일어났다. 아직 어두운데 많은 등반객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다른 형들도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깼다. 쌀을 씻고 불을 붙이고 있는데 비선대 산장 관리자들도 일어나서 영업준비를 하였다. 아침식사가 지금 바로 된다기에 우리는 취사를 멈추고 매식을 하기로 했다. 라면과 밥 대신에 든든한 식사를 할 수 있어 명득이 형이 누구 보다도 반겼다.
    식사를 마치고 배낭을 산장에 보관한 후 천화대로 향했다. 6시 15분이다. 설악골에서 각자 가지고 온 물통에 물을 담았다. 동준이 형이 단단히 각오를 하시는지 2리터 짜리 생수통과 내가 빌려준 1리터짜리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셨다. 천화대에 도착하니 다른 팀들이 시작하고 있었다. 나와 하영, 동준, 명득형을 한 Party, 기원이, 준곤, 승구형을 다른 Party로 편성한 다음 기념 촬영을 했다.
    첫 피치는 내가 먼저 하였고 기원이를 올렸다. 기원이가 올라온 후 본격적으로 2개조로 등반하였다. 각각 빌레이를 보면서 나머지 사람들을 올리는데 순서가 엉망이다. 다 올라온 후 대장으로서 모두에게 경고를 주었다. 처음 편성한 조로 다시 나누고 출발했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목요일까지 비가 많이 왔는데 어제부터 우리의 등반을 축복해 주는 냥 완연한 가을 날씨 같다. 능선에 올라서는 세존봉, 유선대, 장군봉, 적벽, 울산암, 동해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준다.
    시간에 지나고 몇 번 클라이밍을 하고 나니 개인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속도를 맞추기 위해 동준 형과 준곤 형을 서로 바꾸었다. 안자일렌이 필요없는 구간은 자일없이 운행했다. 동준이 형이 매우 힘들어 하시고 뒤쳐지신다. 승구형이 동준이 형과 같이하기 위해 뒤따라 오고, 나 역시 길 안내를 위해 천천히 가니 자연스럽게 등반조는 기원이, 하영형, 준곤형, 명득형과 나, 동준형, 승구형으로 재편성되었다. 동준이 형에 의하면 첫 피치가 너무나 힘들어 하늘이 노오랬다고 하시고, 첫피치 후 가지고 온 담배를 하영이 형에게 주면서 금연을 선언했다고 했다.(이후 서울에 올라올 때까지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하영이 형은 이 소식을 형수님께 전하셨다.
    안자일렌을 하지 않기 시작하니 웬만한 구간은 그냥 올랐다. 점심을 먹기전까지는 하강할 때만 자일을 사용했다. 앞 조가 하강자일을 설치하고 나면 뒷 조의 자일을 앞 조에게 주고, 마지막 하강후 회수하는 식으로 하니 나는 자일을 전담으로 사리는 사람이 되었다.
    1시쯤 점심은 왕관봉이 눈앞에 보이고, 잦은바위골 폭포가 어렴풋이 보이는 곳에서 했다. 김밥을 먹기 전 시바스 리갈을 한잔씩 했는데  술이 입속을 한 바퀴 돈 다음 식도를 통과해 위장을 적시니 전신이 쫘르르 전율을 일으켰다. 이 보다 좋은 술 맛은 경험하지 못했다.
    지금부터 상당한 시간에 걸리는 구간이었다. 명득형이 범봉까지 가는 것에 많은 의욕을 가지고 계셨다. 점심도 왕관봉까지 가서 먹자고 하다가 두번째 경고를 받을 뻔 했다(두번째는 강제 하산 조치). 이대로 가면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아 빠른조와 천천히 가는 조로 다시 편성하기로 하고 신청을 받았다. 결과는 자연스럽게 편성된 현재대로였다.
                      빠른조:기원-하영-준곤-명득,  완만조:명흠-동준-승구.
    빠른 조가 먼저 출발했다. 우리 뒤에 온 팀이 휴식을 취하다가 한사람이배낭을 잦은바위꼴로 떨어뜨렸다. 이때 앞서간 준곤이 형이 우리가 한 줄 알고  “어느 놈인지 빠따를 쳐야겠다”고 하셨다. 식사후는 바로 클라이밍 하는 구간이었다. 기원이가 오르는 오른쪽은 상당히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나는 왼쪽으로 갔다. 결과는 우리가 간 구간이 훨씬 쉬웠다. 올라오는 준곤형 모습이 탈진 직전 상태였다.
    흑범, 염라, 석주길이 눈에 들어 온다. 그러나 바로 앞에 보이는 왕관봉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약 20m 사선크랙을 오르는 기원이가 상당히 힘들어 보였다. 이때 지원조(창선,재홍형)로부터 전화가 왔다. 속초해변에서 회를 먹고 있단다. 맛이 없다고 했다.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왕관봉을 하강하고 나니 5시다. 빠른조는 벌써 저멀리 석주길 쪽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갈 수 없을 것 같아 하산하기로 하였다. 준곤이형에게 전화로 먼저 내려갈 것을 알리고 앞조도 6시 이후에는 더 이상 가지말고 하산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30분 휴식을 취하고 5시30분에 하산을 시작했다. 흑범길 하산은 2/3가 길이 따로 없고 물길로 하산한다. 7시에 설악골 만나는 곳에 도착했고 어둠이 끼기 시작했다. 간단히 휴식을 취하고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깜깜해 지면서 길 찾기가 힘들고 시간은 상당히 지체되었다. 전등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이 칠흑처럼 어두웠다. 앞서간 조가 걱정되었다. 석주길에서 하산을 했을까? 아니면 범봉까지 갔을까? 계곡이라 전화도 되지 않았다. 범봉까지 갔으면 우리 뒤에 있고, 석주길에서 6시쯤 하산했으면 어쩌면 우리 앞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걱정은 걱정으로 끝날 뿐 현재로선 도움을 줄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 우리조 보다 노련한 사람이 많은데 기우일지도 모를 일이다. 천신만고 끝에 설악골 초입에 도착하니 불빛이 보였다.
    “ 아야  킹고!”
    “ 아야  킹고!”
정말 반가운 메아리다. 재홍이형이 물건너는 곳까지 마중나와 계셨다. 기원이조는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고 했다. 비선대에 도착했다. 9시가 다 되었다. 회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영우형, 준곤형 형수님 창선이형 등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계셨다. 나와 승구형을 저녁을 먹고 지원을 나가기로 하고 비상식을 꾸리고 있는데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저녁을 먹고 마치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다시 두번째 산행을 시작했다.

박재홍 05-09-05 10:17
 
  명흠이가 대장이었네?  ㅎㅎㅎ   
산악부에도 능력위주로 재편성?
그게 아니라 기원이 외에 다른 대원들은 다 "지도" 님 들이었겠지?
김태호 05-09-05 18:35
 
  명흠이 글을 읽으니 마치 내가 천화대를 갔다 온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로 현장감 넘치고 흥미 진진하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치 천화대는 천화대인데 나이 오십을 훨씬 넘긴 머리 희끗희끗한 장년 성님들 용기가 너무나 존경 스럽네요!
하영이는 몸에 칼댄지 얼마나 지났다고...너무 무리하는 것 아냐?
역시 예상대로 승구와 명흠이는 기둥 역할을 아직도 확실히 하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