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05-15 09:52
5월 춘계 후기 (지리산)
 글쓴이 : 김혁중
조회 : 3,607  
5월 춘계 후기 (지리산)

일자 : 2008년 5월 9일 ~ 12일
코스 : 정령치-노고단대피소-연하천대피소(1박)-천왕봉-중산리하산로(2박)-중산리
참석자 :
OB - 김수홍(27), 김기석(40), 김광연(41)
YB - 이기원(46), 김혁중(48), 김용준(49), 김형용(50신입), 조계중(50신입)

5월 9일

1. 출발하기 전
  난 지리산은 처음이다. 한번도 가보질 못해서, 너무 멀어서, 너무 커서 지리산은 나에게 상당히 신비로운 존재였다. 장백산맥이 백두산을 중심으로 뻗어있고 다시 그 백두산이 머리가 되는 백두대간은 지리산에서 끝을 맺게 된다. 그리고 난 오늘 그 백두대간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지리산으로 간다.
  부실에 도착하여 대충 시간을 때우다보니 기원이형과 용준이가 들어온다. 목적으로 하는 산과 시간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부실에서 장비를 챙기는 모습은 언제나 비슷비슷하다. 기원이형은 나에게 꼭 파일자켓을 챙겨가라고 하신다. ‘5월인데 뭐가 그리 추울까’ 혼자 생각하며 그냥 아디다스(adidas) 트레이닝복 상의를 일단 챙겨본다. 난 장비를 그냥 대충 챙기는 나쁜 습성이 있다. 조만간 장비들을 많이 구입하면 그때는 잘 챙기면서 다닐 생각이다. 가난하게 다니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신입생들도 대충 시간을 잘 맞춰서 와주었다. 다같이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고 지리산으로 출발이다. 약간 걱정도 된다. 신입생들이 어택을 처음 메고 비박을 하면서 종주까지 해야 한다.

2. 시작점으로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가다보니 어느새 남원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이다. 스포츠클라이밍에 엄청난(?) 의욕을 보이는 형용이는 도착하자마자 풋샵(push up)을 시작한다.(그는 산행 도중에도 틈만 나면 열심히 단련한다.) 혹시나 해서 내가 팔을 교차시키면서 풋샵도 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리고 놀랍게도 3~4개를 거뜬히 해낸다. 난 하나도 못한다.
  우리가 도착한지 얼마 안돼서 수홍이형과 기석이형이 도착하셨다. 정말 든든한 형님들이다. 이렇게 YB 산행에 참여해주시니 너무 감사하다. 형님들 오시자마자 바로 정령치 휴게소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택시비는 한 차에 25000원이다. 남원버스터미널에 택시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게 이 시간에도 등산객들이 꽤나 많은 듯 했다.
  정령치 휴게소에는 엄청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일단 빨리 짐을 풀고 기원이형과 내가 물백(water bag)에 물을 뜨러 가고 수홍이형은 비박할 장소를 알아보시러 신속하게 이동하셨다. 난 이렇게 추울 줄은 몰랐다. 내가 입고 있는 트레이닝복은 바깥의 차가운 바람을 여과 없이 통과시켜준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알아볼 때는 정령치 휴게소 화장실 옆에 샘이 있다고 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그런 것은 없었고, 휴게소 지붕 아래에 울타리 넘어서 엄청난 크기의 통에 먹을 만한 물이 담겨있었다. 열심히 물을 물백에 담았다.

3. 첫 비박
  수홍이형이 정찰을 나가시더니 금새 비박하기 괜찮은 장소를 찾으셨다. 그 어둠 속에서 어떻게 그런 장소를 찾으시는지 정말 신기하다. 바람이 엄청나게 불긴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 곳이 최선인 듯 하다. 산죽(山竹)으로 둘러쌓인 공간에 매트리스를 깔고 침낭 깔고 잠을 잘 준비를 했다. 5월 답지 않게 너무 추워서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물은 0도에서 정확히 얼어주지만 인간은 심리상태와 주변환경에 따라서 상온의 온도에서도 동사할 수 있다. 신입생들이 예상치 못한 추위에 덜덜 떨고 있는게 상당히 불안했다.
  소주 몇 모금 마셔보긴 했지만 너무 추워서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양쪽에서 바람을 맞아가며 잤던 나와 기원이형은 그냥 뜬 눈으로 밤을 지새야 했다.

4. 만복대로
  6시에 출발해야 하는데 막상 출발해보니 시간이 6시 30분이다. 이번 산행의 앞잡이는 나다. 난 앞잡이 라는 단어가 좀 불쾌했다. 보통 앞잡이는 ‘일제의 앞잡이’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과 조합이 되기 때문이었다. 어쨋거나 제대로 된 앞잡이를 처음 해보는 나는 어느 정도 속도로 갈지 몰라(+조금 힘들기도 했다.) 처음에는 상당히 느리게 갔다. 10분이 지나도 내가 속력을 높일 생각을 않자, 뒤에서 수홍이 형의 “그냥 앞잡이는 빨리 빨리 가는거야. 우리 갈 길이 멀어” 말씀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뒤에서 형용이가 무섭게 날 쫓아오고 열심히 앞으로 빼다보니 다른 팀이 이제 일어나서 산행을 시작하려고 채비중이었다. “우리는 길 아닌 곳으로 가는데 같이 종주 가실래요?” 하고 나에게 묻는다. 길 아닌 곳으로 가는 그들의 도전정신에 박수를 쳐주고 싶긴 하나 그냥 살짝 웃어주면서 거부의사를 밝혀주었다.
  출발한지 20분도 안됐는데 계중이는 탈진 직전이다. 나는 이런 상황을 심히 우려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우리집 뒷 산(수리산)을 오를 때도 그는 상당히 오르막을 힘들어했었다. 참 난감했다. 그렇다고 하산할 수는 없는 일이고 OB형들께서 계중이를 다독여주시며 다시 산행을 전개했다. 정신 없이 걷다보니 7시 20분에 만복대에 도착했다. 계중이가 힘들게 오긴 했지만 그래도 상당히 빨리 걸은 편이다. 만복대 주변은 바람이 상당히 강해서 나무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잠깐 쉬다가 바로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5. 성삼재
  만복대에서 수홍이형이 먼저 출발하셨다. 뒤이어 기석이형이 출발하시고 내가 신발끈을 묶는 사이에 나는 앞잡이에서 맨 뒷잡이가 되어버렸다. 신발끈을 잠깐 묶었을 뿐인데 수홍이형은 저기 멀찍이 가셔서 거의 점으로 보인다. 미친 듯이 뛰어가서 다시 앞에 서기 위해 노력했는데 수홍이형은 너무 빠르시다. 이미 쉬는 지점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계중이는 아직까지 상당히 힘들어하고 있었다. 다리가 좀 풀리면 괜찮은데 아직 다리근육이 풀리지 않은 듯 했다. 그래도 계속 웃는 얼굴을 하고 있으니 정말 다행이다.
  고리봉을 살짝 우회하여 계속 걷다보니 이내 성삼재가 눈 앞이고, 도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니 코 앞으로 성삼재가 다가온다. 성삼재에 도착하니 9시 10분이다. 성삼재 휴게소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이곳의 풍경이 일품이긴 한데, 사람들이 줄지어서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것도 참 대단한 광경이다. 곧 우리도 저 줄을 따라 노고단을 올라야 한다.

6. 노고단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길은 그저 아스팔트길이다. 이런 길은 별로 재미도 없고 이제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의 광선은 나의 에너지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 기원이형이 “너무 앞서만 가지 말고 휴식지점을 알아보라”고 하신다. 나도 그러고 싶긴 했지만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에 휴식할만한 곳이 정말 없었다. 아스팔트길 중간에서 쉬기도 좀 그렇고 성삼재에서 충분히 쉬었기 때문에 난 한번에 올라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계중이가 조금 힘이 나는지 제법 속도를 내고, 형용이도 곧잘 따라오고 있었다. 노고단 도착하면 오늘 산행의 1/3은 끝난거다.
  노고단대피소에 예상보다 5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일찍 도착한건 좋았는데 노고단대피소에서 쉬다가 카메라를 잃어버렸다. 정말 의욕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난 이번에도 장비를 잃어버렸다. 지도위에 카메라를 올려놓았는데 이건 누가 훔쳐가지 않는 이상 카메라가 사라질 리가 없었다. 정말 힘겹게 노고단 고개로 올라갔다. 잠시 절망하고 있다가 노고단을 향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길을 상당히 깔끔하게 나무로 포장하고 있었다. 노고단에서 왕시루봉에서 흘러나오는 능선길을 잠시 보고, 아주 멀리 보이는 천왕봉과 중봉을 바라보니 시무룩했던 마음이 약간이나마 풀린다. 예정에 없었던 노고단을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니 11시 30분이다. 어서 연하천대피소로 출발해야 한다. 오늘 점심은 임걸령에서 먹기로 했다. 수홍이 형이 먼저 임걸령에 자리 잡는다고 하시며 뛰어가셨다. 기석이형이 광연이형과 통화하셨는데 광연이형이 뱀사골 쪽으로 올라온다고 하신다.

7. 임걸령
  임걸령에 도착하니 시간이 12시 30분이었다. 가는 길에 뒤에서 계중이가 자꾸 “언제 도착하나요? 얼마나 남았나요? 또 오르막길 있나요?” 하며 귀찮게 묻는다. 나의 ‘프렌들리’한 이미지를 감안하여 최대한 친절하게 가르쳐주긴 했지만 계속 물어보니 은근히 짜증이 난다.
  임걸령에 도착하니 지도에 나온것처럼 샘이 있었다. 자리를 깔고 버너를 키고 라면을 끓여먹으려는 찰나에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정말 귀신같은 타이밍이다. 이런 예상치 못한 일 때문에 30분이 넘는 시간을 낭비하게 되었다. 일단 딱지를 떼었으니 라면이라도 먹게 해주면 안되겠냐며 기석이형이 부탁을 하시니 직원들이 허락한다. 기석이형의 이런 측면은 상당히 닮고 싶다. 난 이렇게 남들과 잘 타협하고 협상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 않는게 아니라 하려고는 하는데 잘 못한다. 임걸령에서 낮잠 때리고 그다음 목적지로 출발하니 2시 20분이다.

8. 뱀사골대피소(화개재)
  임걸령을 지나 약간 긴 오르막을 걸어가고, 능선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고 노루목삼거리를 지나고, 삼도봉을 넘다보니 대피소에 다다르게 되었다. 삼도봉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3 개 도(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의 경계가 되는 곳이라 하여 삼도봉이라고 한다. 원래는 반야봉까지 갔다가 와야 했으나 우리 일행의 속도가 너무 느렸고 체력도 충분치 않은 듯 하여 반야봉은 생략하게 되었다. 여기서 모두 간식 꺼내먹고 물을 마시는데 몸이 좀 춥다. 날씨가 조금씩 추워지는게 상당히 불안하다. 오늘 밤도 상당히 추울 듯 하다. 벌써 4시를 넘어간다.

9. 연하천대피소
  오늘의 종점인 연하천대피소를 향하여 계속 걸어가야 했다. 중간에 넘어야 하는 봉우리가 너무 많아서 상당히 피곤하다. 표지판에는 연하천대피소가 2.5km 밖에 안남았다고 하지만 2.5km 가 나에겐 너무나도 길게 느껴진다. 걸어도 걸어도 명선봉은 보이질 않는다. 어느새 6시가 지나고 도착 예정시간인 6시 30분 안에 도착하기 틀려버렸다. 신입생들도 꽤나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먼저 앞서가신 수홍이형이 정말 대단하다. 엄청난 빠르기로 이곳들을 다 지나쳐가신 것 같다. 어느새 명선봉을 넘고 잘 닦여진 계단길을 쿵쾅거리면서 내려가니 드디어 연하천대피소에 도착이다. 오늘 운행은 여기서 종료한다. 시계를 보니 7시 10분쯤 되었다. 벌써 해가 지게 생겼다. 형용이는 역시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오버행 바위에 매달리고 있다.
  광연이형이 대피소에서 우리를 반겨주신다. 실제로는 처음 뵙는 형인데 산악부 회원명단에서 보았던 사진과는 많이 달라서 놀랐다. 처음에는 사진만 생각하고 있다가 잘 못 알아봤다. 실제로 뵙고 보니 약간 샤프하면서 부드러운 이미지였다. 샤프하면서 부드럽기는 참 힘들다. 하지만 광연이형은 웃는 모습이 부드러워 샤프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주셨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땀이 내 몸에 있던 온기와 함께 식어내리고, 너무 추워서 움직이기가 싫다. 응당 다같이 식사준비를 해야하거늘 난 뒤에서 그냥 꼼지락꼼지락 거린다. 그래도 가능한 힘을 내서 배낭 정리하고 비박준비를 해본다. 여기 연하천대피소에는 정말 사람들이 꽤나 많다. 수홍이형이 자리를 맡으러 일찍 가주지 않으셨다면 꽤나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 추위에 떠는 사람들, 배고픔에 굶주리는 사람들, 다리를 연신 두드리는 사람들 모두 집에 돌아가면 오늘의 산행을 곱씹으며 미소 지을 수 있길 기도해본다.
  산에서 먹는 식사는 일반적인 식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객관적으로 볼 때 비위생적이고 맛도 그다지 없으나, 주관적으로 볼 때 그 상황에서는 너무 맛있을 수밖에 없다. 일단 살기 위해서 열심히 먹어야 한다. 자기 위해서 다같이 플라이를 덮고 자리에 누워보니 눈에 무수히 많은 별들이 검은 하늘에서 반짝이고 있다.

10. 3일차 - 벽소령을 향하여
  아침에 빨리빨리 준비해야 하거늘 준비가 너무 느려졌다. 오늘 일정이 널널하긴 하지만 앞으로는 아침에 빨리 짐 챙기고 밥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7시 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오늘도 앞잡이는 일단 내가 한다. 하지만 점심 먹고 나서는 기원이형이 하시기로 했다.(실제로는 용준이가 앞잡이 하게 되었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벽소령대피소 가는 길은 차로 가도 될 정도로 매우 잘 닦여있다.
  형제봉이 중간에 끼어 있는데 이 형제봉 부근의 바위가 상당히 크다. 암벽등반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는 형용이는 보자마자 저 바위의 그레이드(grade)를 매겨보고 있다. 상당히 힘이 빠져있는 상태에서도 바위를 보면 어떻게 저 바위를 오를지 열심히 궁리를 하는 형용이는 ‘암벽등반 중독증(rock climbing addiction)' 초기 환자의 모습이다. 사실 나도 꽤 오를만한 바위를 보면 자연스럽게 홀드들이 어디 있을지 머리를 굴려보게 된다.
  어쨋거나 형제봉을 넘고 쉬운 능선길을 계속 걷다보니 벽소령대피소에 도착이다. 입구부터 곳곳마다 국립공원관리소 직원들이 먹이를 노리듯 카메라렌즈를 통해 지나가는 등산객들을 주시하고 있다. 잠깐 쉬었다가 다시 오늘 점심을 먹을 세석대피소를 향해 출발이다.

11. 세석산장
  선비샘부터 앞잡이가 용준이로 바뀌었다. 이제 좀 천천히 걸어도 되어서 상당히 기분이 좋다. 물 좀 떠갈려고 했더니 선비샘에는 물이 아주 조금씩 밖에 안나오는데 사람은 매우 많다. 다음에 혹시 지리산 또 오게 되면 선비샘에서 물 떠갈 생각은 그냥 안하는게 좋을 듯 하다. 칠선봉과 영신봉을 넘고 급경사 계단길을 마구 내려가니 꽤 큰 규모의 세석대피소가 눈에 보인다.
  세석대피소에서도 수홍이형이 먼저 가셔서 자리를 맡아놓으셨다. 이게 바로 진정한 앞잡이 인데 경험과 체력이 부족한 나는 이렇게 하지 못했다. 수홍이형처럼 하기 위해서는 그냥 산에 많이 다녀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대피소에서 물을 충분히 떠놓고 라면을 열심히 끓였다. 나는 가능한 많이 점심을 먹었다. 2시간도 안 지나서 허기가 느껴질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난 산에서 왜 이렇게 빨리 배고픔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아름답게 꽃으로 장식된 촛대봉을 잠시 바라보다 일단 낮잠한번 자본다.

12. 장터목산장 인근까지
  세석대피소에서 오후 2시 40분쯤 출발했다. 여기서 장터목대피소는 길도 좋고 금방 갈 수 있다. 촛대봉 인근 지점부터 다시 수홍이형이 달리기를 시작하셨다. 왠지 이번만큼은 수홍이형을 따라가보고 싶었다. 어차피 앞잡이는 용준이고 재학생들 뒤에는 광연이형이 계시니 든든했다. 기석이형께 수홍이형을 따라가도 괜찮겠느냐고 여쭙고 허락을 받은 뒤 기석이형과 함께 수홍이형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엄청난 스피드로 가시는 수홍이형을 따라가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재학생 때 수홍이형은 10분에 1km씩 가셨다고 한다. 달리다시피 하여 장터목산장 인근까지 마구 달려가니 앞으로는 정령치와 만복대, 뒤로는 중산리가 보이는 지점에 도착하게 되었다. 여기서 일단 나머지 사람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지리산은 어느 봉우리를 가든 경치가 정말 끝내주는 것 같다.
  15분 정도 지나자 용준이를 필두로 한 우리 일행이 도착하였다. 잠깐 용준이의 ‘설악가’를 비롯한 여러 산노래들 듣고 형용이의 강산에 밴드 노래(노래 제목을 까먹었다.)를 듣고나니 땀이 식으면서 추워졌다. 이제 다시 출발할 시간이다. 일정이 바뀌어서 오늘 천왕봉을 갔다가 아예 중산리 하산로 중간의 로타리대피소까지 가기로 했다.

13. 천왕봉
  장터목대피소를 지나 바로 제석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경사가 좀 가파르면서 은근히 오르기 힘들었다. 난 배가 고파서 진행하기 상당히 힘들었지만 마지막이 다가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걸어 올라갔다. 천왕봉 아래에 있는 제석봉을 오르니 천왕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꽤 많은 철계단들을 다 올라갈 생각을 하니 정말 눈앞이 캄캄하지만 신입생들이 뒤에 있어서 그다지 내색하진 않았다. 그냥 힘이 남아도는 척을 하며 올라갈 뿐이다.
  왠지 천왕봉이 가까워질수록 힘이 더욱 나는 듯 했다. 천왕봉을 딛는 순간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냥 이번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왔고 나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는 생각밖에 없다. 광연이형이 주시는 방울토마토를 그냥 연신 씹어댔다. 방울토마토가 정말 맛있었다. 후르츠칵테일 역시 너무나도 맛있는 간식거리였다.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고 잠깐 경치를 감상하니 역시 사람들이 왜 그렇게 지리산을 찾는지 알만하다.
  저쪽 건너편으로는 북쪽으로 뻗어나가는 백두대간이 보이고 중산리쪽으로 눈을 돌리면 집채만한 바위들이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릿지길이 보인다. 우리가 왔던 곳으로 눈길을 돌리면 백두대간이 꺾여나가는 지점쯤에 있는 노고단이 보일락말락하고 그 앞에 석양을 받아 붉게 보이는 움푹파인 봉우리는 반야봉이다. 한국인의 기상은 이 천왕봉을 기점으로 온 사방으로 뻗치는 계곡물들과 함께 발산한다.

14. 하산 그리고 반전
  계중이가 하산길에 매우 신이 났다. 엄청난 속도로 하산을 하는데 오히려 나보다도 빠를 듯한 속도다. 반대로 형용이는 꺼져가는 태양빛과 함께 힘도 떨어졌는지 기운이 없다. 나는 그냥 그저 그렇다. 그냥 ‘이제 끝났다’라는 생각 밖에 없다. 이제 법계사까지만 하산을 완료하면 오늘은 좀 쉴 수 있다. 걷다보니 저기 멀리에 뭔가 공터 같은 곳이 보였다. 그곳을 향하여 광연이형이 “저기가 법계사다” 라고 하시는데 아무도 믿질 않는다. 나도 그곳이 법계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금 걷다보니 그곳이 법계사 입구였다. 이제 다 온 것이다.
  조금 춥긴했지만 그래도 다같이 식사준비를 하고 용준이는 물을 떠오면서 저녁을 먹을 준비를 했다. 내가 끓인 잡탕찌개가 먼저 완성되고 기원이형의 환상적인 밥을 끝으로 모든 저녁거리가 완성될 무렵 로타리대피소에서 비박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원이형과 광연이형이 사실 확인을 위해 로타리대피소 직원에게 물어보았는데 안타깝게도 “물어보지 않았으면 그냥 비박해도 넘어가주려고 했는데, 우리에게 물어본 이상 어쩔 수 없다.”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음부터는 대피소 앞에서 비박할 때는 물어보지 않고 일단 매트리스깔고 자야겠다. 하는 수 없이 하산을 해야 했는데 내 몸은 추워서 정신이 내리는 명령을 거부하고 있었다.(그 다음날 천왕봉 부근에 5cm 가량의 눈이 왔다고 한다.) 일단 어쩔 수 없이 야간산행 시작이다.

15. 마지막 밤
  수홍이형이 먼저 비박할 곳을 찾으러 내려가시고, 나머지는 기석이형을 선두로 조심스럽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캄캄한 밤중에 비박할 곳을 어떻게 찾으실지 조금 불안했다. 차라리 중산리로 하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야간산행을 처음 하는 계중이와 형용이는 정말 첫 종주부터 온갖 경험을 다하는 듯 했다. 조금 내려가다보니 “아야 킹고” 소리가 들린다. 수홍이형이 비박터를 찾으신 것이다. 난 아무 것도 안보이는데 도대체 어떻게 찾으신건지 모르겠다. 줄로 만든 울타리 넘어서 살짝 걸어가다 보니 놀랍게도 10명은 충분히 잘 수 있는 공터가 있었다. 역시 경험의 힘이다.
  기원이형을 뺀 재학생들은 그냥 바로 매트리스 깔고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누워서 가만히 밤하늘을 바라보는데 오늘도 별이 무지 많이 보인다. 가만히 별들을 바라보면서 옆의 형용이와 잡담을 떨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별들도 잘 시간이다.

이기원 08-05-15 14:18
 
  장하다. 역시 산행기의 제왕이구나.
박동준 08-05-15 16:58
 
  수고많았구나  수홍이이하 다들 잘해주었다. 신입생들 잘 가르쳐서 대를잇기 바란다.
최준곤 08-05-20 18:50
 
  O.B  三 金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27 金= 재학생 춘계 동참 전문으로  우리산악부에서 속도가 가장 빠른 사람. 비박사이드트 헌팅의 達人.
40 金= 힘든 시간 내어 알찬 산행 했군.-장가들기전에 힘을 길러두도록.
41金 =성공적인 롤백산행

48 金=산행기 참좋은데 기록적인 요소가 보완 되었으면 錦上添花.
-----별들도 잘 시간이다 / '알퐁스 도오데의  별'

40金 08-05-20 20:37
 
  넵! 언제갈지 모르지만.. 힘을 기르도록 하겠습니다.
김혁중 08-05-21 12:42
 
  기록적인 요소는 꼭 보완해야 하겠습니다. 다음 산행기는 좀 다르게 써보겠습니다 ^-^
알퐁스 도오데의 '별'을 의식하고 쓴건 아니었는데 소설을 다시 읽어보니 정말 부끄럽네요 ㅠㅠ;
MatthewCZV 10-10-1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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