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02-1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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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혁중
 조회 : 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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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6. 아침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좀 더 자고 싶다. 난 집에서 보통 4 시간 정도 잔다. 그리고 나름대로 공부 좀 하는데 산에서는 확실히 4 시간 보다는 더 많이 잔 것 같은데, 정말 피곤하다. 하긴 자다가 깨다가 자다가 깨다가, 30분 마다 반복하다 보니 잠을 잔 것 같지도 않다. 게다가 늦게 일어나서 명흠이 형님께 혼났다. 내일은 꼭 일찍 일어나야겠다.
아침은 최대한 많이 먹었다. 가다가 또 배고플 것 같기 때문이었다. 얼른 텐트를 접고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춰서 딱 출발하는데 시간이 약간 늦은 듯도 하다. 시계를 보니 6시 45분이다. 최대한 많이 걸으면 12시간 정도 걸을 수 있다. (실제로 13시간 정도 걸었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으로 철저히 준비했다. 명흠이 형이 아주 좋은 등산용 모양말을 빌려주셨고, 스패츠도 제대로 꽉 끼워서 찼다. 이정도면 아무리 눈 속에서 해매도 발이 시려울 것 같지 않다.
7. 1318봉 ~ 황철봉
눈의 상태가 어제보다 좋다. 어제처럼 가슴까지 눈이 차오르는 불행한 일은 거의 없다. 가끔 재수 없게 나무 주변부를 밟아서 몸이 빠지긴 했지만 그런대로 참을 수 있다. 나무 주변부나 돌 주변부는 절대 밟아서는 안 된다. 밟으려면 확실히 나무뿌리나 돌 윗부분을 밟아야 한다. 그 주변부는 십중팔구 엄청난 함정이다. 빠져 나오려면 1분 정도 허우적거려야 겨우 빠져 나온다.
조금 걸으니까 벌써 황철봉까지 왔다. 어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이다. 확실히 눈의 상태가 좋으니 심신이 가볍고, 그 가벼운 몸으로 가니까 속도도 빠르다. 황철봉에서 경치를 살짝 구경하다가 저항령을 향해서 계속 나아갔다. 이 황철봉 주변의 너덜지대도 1318봉 만큼이나 넓었다. 게다가 길을 제대로 찾기도 힘들었다. 명흠이 형님의 보법은 신출귀몰해서 흔적을 찾기가 힘들었다. 이름을 붙이자면 '무영보법' 정도가 된다. 그림자조차 남지 않는 그런 보법이다. 형님의 뒤만 따라가다가 흔적이 안보이면 그냥 감으로 내려가야 했는데 내가 가는 길은 온갖 난리법석을 다 피워야 지나갈 수 있는 험한 길이었다. 가다가 넘어져서 노루의 똥과 키스할 뻔했다. 똥과 5cm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불쾌하다. 정말 난 ‘길눈이 어둡다.’ 명흠이 형님뒤를 바짝 안쫓아가면 이런 불상사가 생긴다.
8. 황철봉 ~ 저항령
너덜지대이긴 하지만 내리막길이라 힘이 엄청나게 드는건 아니다. 게다가 너덜지대를 어제처럼 추한 꼴로 오르락 내리락 하진 않았기 때문에 꽤나 빨리 통과할 수 있었다. 너덜지대 끝지점에서 다시 눈을 만났는데 명흠이 형이 글리세링(Glicering?)을 시도하라고 하신다. 먼저 시범을 보이시는데 이거 꽤 재밌어 보인다. 명흠이 형께서 무표정으로 심각하게 글리세링을 하셨다면 그렇게 재밌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보았다. 명흠이 형께선 해맑은 웃음과 함께 신나게 글리세링을 하고 계셨다.
앉아서 폴대를 잘 부여잡고 미끄러져 가보는데 이대로 집까지 가고 싶다. 엉덩이가 아프기도 하고 꽤나 속도감이 있어서 무섭기도 하지만 그래도 재밌다. 하지만 그다지 각도가 없는 곳에서도 볼썽사납게 글리세링을 할 순 없기에 다시 일어나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기회가 온다면 꼭 다시 해봐야겠다. 어쨋거나 어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하게 산행을 하고 있다. 힘들 것으로 예상했는데 벌써 저항령에 도착했다.
계속 느끼는 거지만 이 구간에는 특별히 봉우리에 올라온 것을 기념하는 비석이나 이정표 같은 것들이 전혀 없다. 그런 것들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성취감이 생길텐데, 이 산은 그저 나에게 얼른 앞으로 가기나 하라고 재촉한다.
9. 저항령 ~ 마등령을 향해 살짝 갔다가 다시 리턴
다시 너덜지대가 나온다. 힘들게 올라가고 있는데 용준이가 뒤쳐진다. 아까 너덜지대에서 다리를 좀 다친 듯 한데, 예전에 다친 무릎 부상과 겹쳐진 것 같다. 상당히 힘들어 보인다. 원래 코스대로라면 마등령으로 가야 하는데 용준이의 무릎 상태는 너무 안 좋다. 힘들게 너덜지대를 올라왔는데 명흠 형님께서 다시 내려가자고 하신다. 힘들게 올라와서 내려가고 싶진 않지만, 확실히 명흠 형님의 판단대로 가야할 것 같다. 무리하게 이 곳을 지나갈 순 없을 듯 하다. 다시 저항령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용준이가 상당히 고생하고 있었다. 이때 형님들의 존재가 피부로 다가온다.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다. 내 머리 속에는 우주가 탄생할 때 빅뱅(Big Bang)이 일어나듯 혼돈으로 가득 했는데 차분하게 코스를 변경하시고 용준이를 엄호하면서 내려오신다.
10. 저항령 계곡 ~ 계곡 시작 지점의 너덜지대
명흠 형님께서 저항령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설명해주신다. 멧돼지가 많은 계곡이라서 저항령이라고 설명해주신다. 정말 멧돼지로 추정되는 발자국들이 도처에 깔려있었다. 이곳은 산짐승 외의 인간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저항령 계곡 처음 부분은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눈이 허벅지까지 차오르긴 했지만 내리막길이라서 발만 뻗으면 힘도 안들이고 갈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명흠 형님 뒤를 따라가는데 그냥 죽 이렇게 가고 싶었다. 잠깐 쉬면서 행동식을 꺼내 먹는데 너무 맛있다. 점심을 안 먹어서 일단 이거라도 먹고 살아야 겠다.
잠깐 쉬고 걸어가는데 또 너덜지대가 나온다. 돌이 마구 굴러 떨어져서 이런 길이 생긴 것 같다. 용준이의 통증은 극에 다다른 듯 하다. 결국 너덜지대에서 용준이 배낭에 있던 짐들을 형님들이 나눠서 지게 되었다. 내 가방에도 넣어야 했는데 난 하나도 거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한심했다. 그래도 이제 너덜지대를 제법 빠르게 통과할 수 있을 듯 하다. 다음에 너덜지대가 나온다면 가능한 손을 안 쓰고 훌쩍 뛰어 넘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뒤로 너덜지대는 나오지 않았다.)
11. 본격적인 저항령 계곡
너덜지대가 끝나고 본격적인 계곡의 시작인데 정말 이 곳의 길을 종잡을 수가 없다. 아니 길이 있긴 한지 모르겠다. 눈이 어제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는다. 명흠이 형은 신기하게도 길을 다 찾아내신다. 조금씩 길에서 벗어날 때도 있지만 웬만하면 10분 안에 정상적인 코스로 다시 우리를 인도하신다. 여기서 명흠이 형이 날 버리고 그냥 가신다면 난 정말 죽을 수밖에 없다. 불귀의 객이 되어 귀신이 되지 않는 이상 내가 이 저항령 계곡을 혼자만의 힘으로 나갈 수는 없다.
형님께서 신내림을 받으신 것은 절대 아닐테고, 분명 뭔가 비법이 있을 듯하여 길찾기 방법을 여쭈어 보았다. 몇 가지 비법을 알려주셨는데 다음과 같다.
① 나뭇가지들이 이상하게 꺾여있고나 훼손되어 있는 흔적을 주의하라
- 괜히 나뭇가지들이 꺾여있을 리가 없다. 사람이 지나다니면서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그 나뭇가지들을 꺾어놓은 것이다.
② 톱으로 나무를 자른 흔적
- 나무가 자연적으로 쓰러질 때와 톱으로 나무를 쓰러뜨린 흔적은 확실히 다르다.
③ 인공구조물
- 돌을 쌓아서 돌탑을 만들어 놓았거나, 지나가는 사람이 리본 고리를 나무에 달아두는 것도 유심히 봐야 한다.
④ 발자국
- 사람 발자국인지 동물 발자국인지 잘 구분해야 한다. 특히 멧돼지 발자국은 은근히 사람을 심난하게 만든다.
현재 기억나는 것은 이 정도다. 확실히 위의 방법들을 상기하면서 길을 가다보니 제법 길을 찾을 수 있을 듯 했다. 하지만 저것 외에도 명흠이 형의 개인적인 경험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길을 정 모르겠으면 내려가되 올라가가지 않는 것이다. 러셀이 안 되어 있는 이 눈길을 올라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길을 잘못 들게 되면 차라리 내려가는 것이 낫지 올라가는 것은 엄청난 체력 소모를 요구한다. 또 명흠이 형은 저항령 왼쪽 편에 길이 잘 나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계셨다. 따라서 정말 아리까리한 길이 나타나면 왼쪽 그것도 가능하면 위쪽으로 올라가는 방법을 택하셔서 길을 잃어서 고생하는 경우의 수를 많이 줄이게 되었다.
길을 잘 찾아가는 것은 다행스러웠지만 내 정신은 배고픔과 추위 그리고 양 발의 고통으로 혼미해져 갔다. 더 이상 산행을 계속할 체력이 없는 듯 했다. 조금 걷다가 얼마 안되서 그냥 쉬고 싶었다. 이제는 스패츠가 무용지물이 되어서 이중화 속으로 얼음이 계속 들어오고, 양말에도 점점 물기가 차고 있었다. 발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오늘 안에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내 몸이 내 정신보다 먼저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끝없는 이 계곡의 밑바닥을 향하여 가면 갈수록 내 마음도 끝없는 나락을 향하여 가고 있었다.
12. 제 2 야영지로
해가 서산으로 넘어갔다. 양쪽이 산으로 둘러 쌓인 이 계곡은 특히나 더 빨리 해가 지는 듯 했다. 살짝 눈물이 나왔다.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가능한 힘든 표정은 보이지 않으려 애를 썼다. 뒤에는 내 후배와, 나를 믿어주시는 하늘같은 선배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해는 보이지 않는데 설상가상으로 내 해드랜턴이 작동하질 않았다. 이게 언제 제대로 작동할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달빛에 의존해서 가야 했다. 베토벤의 소나타들 중 가장 유명한 월광이 떠올랐다. 그 중 1악장과 3악장이 유명한데 지금의 상황은 1악장에 해당했다. 분산화음과 약간 슬프면서 엄숙한 멜로디의 곡인데, 정말 난 여러 가지 잡생각들로 정신이 분산되어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베토벤의 곡은 아름답지만 내 지금 상태는 추하기 그지 없다는 것이다.
명흠이형과 상국이형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먼저 앞서가셨던 두 형의 목소리만 들려온다. 감으로 대충 찾아 가봤는데 길을 잘 찾아서 천만다행이었다. 내가 했던 짓들 중에서 가장 잘한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길속에서 길을 찾아서 용준이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했다. 그는 내가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를 것이다. 형님들께서 논의해보신 결과 오늘 하루 더 야영을 하기로 했다. 난 저항령 계곡의 반 정도 왔을 때 이미 하루 더 야영 하는 것을 각오 했다. 적당한 야영지를 찾고 짐을 내려놓고 재빨리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난 고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할 안식처를 정비하고 있었다.
13. 제 2 야영지에서
사실 어제 야영이 꽤 즐거워서 하루 더 야영하고 싶었다. 형님들과 텐트에서 담소를 나누며 다같이 언 몸을 녹이는 것은 산행 중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텐트를 다 치고 나서 어제처럼 용준이와 주위의 깨끗한 얼음을 주워 담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준비를 했다.
다행히 식량이 남아 있어서 배불리 떡국을 먹을 수 있었다. 식량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다면 매우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먹을 것이 없던 난 아마 1년 치 아이스크림을 그 산에서 다 먹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발 상태는 끔찍했다. 뭔가 검푸른 물집이 올라와 있었다. 난 제발 그것이 동상이 아니길 바랐다.(확인해보니 동상이었다. 다행히 의사가 바늘로 좀 째고 빨간약 발라주는 것으로 끝냈다.)
야영은 제법 즐겁다. 난 처음에 야영이 너무 싫었다. 준비할 것도 너무 많고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합리적인 이유는 댈 수 없지만 하루 더 야영하는 것이 즐거울 정도로 난 언제부턴가 야영을 즐기게 되었다. 다행히 형님들도 즐거우신 듯 했다. 형님들의 옛날이야기를 비롯하여 산악부 이야기들 좀 하다보니 밤이 더욱 깊어져만 갔다. 하지만 하염없이 담소만 나눌 수는 없었다. 내일은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서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 잠을 충분히 자놓지 않으면 내일 후회할 것이다.
14. 잠자면서
명흠이 형이 발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어택을 발 아래에 두라고 하셨지만 난 처음에 그 의미를 몰랐기에 그냥 잠을 청했다. 집에서도 그냥 자는데 굳이 여기서 발 받침대를 만들어야 하나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발 받침대는 꼭 만들어야 한다. 텐트 아래에 그라운드시트를 깔았지만 그 정도로 한기를 억누를 수는 없었다. 텐트에 조금씩 스며드는 한기는 얼어붙은 내 발도 모자라서 내 발 속의 혈관마저 얼려버릴 듯한 기세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택을 들고 텐트 안에서 부비적부비적 할 수도 없다. 할 수 없이 난 그냥 다리를 최대한 구부리고 잠을 잤다. 최악의 선택이었다.
15. 여명
오늘도 늦게 일어났다. 명흠이 형께 꾸중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어제 다리를 구부리고 자서 다리가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축구선수들이 오금 부상을 상당히 많이 당하는데 그 오금부상이 뭔지 알 듯 했다. 다리를 제대로 들지도 못하겠다. 정말 최악이다. 떡라면을 끓여먹으면서 나는 집에서 두 다리 쭉 뻗고 따듯하게 있는 상상을 했다. 아 힘이 난다. 이대로 백두산까지 종주할 기세다. 이제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끝이다. 백담사 입구로 돌아갈 수 있다. 산악부실로 돌아가면 짐 풀고 바로 집으로 가려 했는데, 짐 풀고 나서 한 잔 하고 가고 싶다.
16. 종장
사냥꾼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러셀을 해놓아서 길이 매우 좋다. 애초에 3 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 됐던 코스가 1시간 만에 끝나버렸다. 용두사미란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초반의 미시령 고개부터의 길은 마치 난해한 수학문제처럼 밑도 끝도 없었는데 지금 이 길 그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길이 어렵든 쉽든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중요한건 난 이 길 위에 서있다는 것이다.
만약 마등령으로 계속 갔다면 어떠했을까.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두 갈래 길에서 우리 팀은 저항령 계곡을 택했고, 마등령 능선은 가지 않은, 아마 다시는 가기 힘든 길이 되어버렸다. 이 선택은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동계산행을 갔던 것은 또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가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마등령을 가지 않은 것은 잘 모르겠지만 동계산행을 갔던 것은 정말 잘했던 것 같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다보니 어느새 종착지인 청운교에 도착했다. 엄청난 기쁨이 몰려왔다. 힘들었던 산행이라 그런지 기쁨은 여타 다른 산행을 마치고 느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형님들께서도 무사하게 산행을 마치셨고, 나와 용준이도 별 탈 없이 산행을 마쳤다. 이 모든 것이 다 형님들 덕분이다. 앞으로 언제 다시 이 길을 올지 모르겠지만 나도 후배들을 잘 이끌어서 이 길을 다시 걸어와 보고 싶다. 그렇게 이번 겨울에서 가장 길고 길었던 2박 3일이 끝나버렸다.
에필로그
산에서 내려오고 나서 시영 형님의 차를 타고 백담사로 돌아가게 되었다. 기원이 형도 함께 차를 타게 되었다. 사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산행이 어떠했냐고 물어보시는데, 다행이다, 난 웃으면서 “재미있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번 산행에서 아쉬운 점도 있다. 내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산을 즐겼어야 했는데 나의 생존본능에 이성은 마비되었다. 어쨋거나 재밌었다는게 중요한거다. 백담사 입구에서 황태해장국을 2 그릇이나 먹었다. 난 여차하면 3 그릇도 먹을 기세였다.
남이 밥을 사주는데 배고프다는 듯이 마구마구 처먹는게 예의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긴 하다.(예의에는 어긋나지만 난 내 후배가 맛있게 많이 먹어주면 기분 좋은데 동질감을 느끼는듯히디.) 하지만 정말 배고팠다. 돌아가는 길에 시영 형님이 유명한 집의 냉면도 사주셨는데 냉면도 2 그릇 먹었다. 냉면 맛은 예술이었다. 나의 위장은 시공간을 압축해놓고 있다가 그 압축해 놓은 공간을 열어버린 듯 했다. 그 공간 속으로 미친 듯이 음식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빛조차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결국 폭발하듯이 빨아들이다가 일정 수준에서 폭발하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난 그 우주의 법칙에 따라 수선관에서 2박3일간 먹었던 것들을 모두 배출해냈다. 그동안 칼로리 소모가 심해서 배출하는 것이 거의 없었는데, 그만큼 산행이 나에겐 좀 힘들었던 것 같다.
시영 형님 덕분에 아주 편하게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동상에 걸린 발을 이끌고 학교에 갔다면 정말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학교 부실 바로 앞까지 재학생 일동을 데려다 주셔서 정말 너무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또 산행을 이끌어 주시고 이번 동계산행을 기획하고 집행하시는데 너무 수고해주신 명흠이형, 내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시던 상국이형과 준곤이형 감사하는 마음 이상으로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함께 산에 간 것이 엄청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 또 바쁘신 일정을 쪼개서 이렇게 동계산행에 참여해주신 선배님들께도 너무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준 설악산과 2월의 눈에게도 감사드리고 도중에 내가 부러뜨린 무수히 많은 나뭇가지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
2008년 2월 19일 화요일 동계산행을 마치고 나서
성균관대학교 산악부 48기 김 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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