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7-11-0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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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민호
 조회 : 2,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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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10시가 넘었다.
오히려 이럴 땐 마음이 편해진다.
1~20분 늦어질 땐 급해서 빨리 가야하겠다는 마음뿐 이지만, 이미 불가능해진 상황에선 편하게 마음 먹는 것이 오히려 낫다.
일어나서 핸드폰을 켜니 명흠이형이 꺼진 핸드폰에 두 번이나 전화를 했다. 미안한 마음 뿐이다.
천천히 씻고 나갈 준비를 하고, 어제 챙겨둔 배낭에서 모든 장비를 꺼내놓고 거의 빈 배낭을 챙겨서 집을 나선다.
금요일 밤에는 사람과산 창립 기념식이 있었다. 거기서 이번 산악문학상 상을 받고 이어진 술자리가 새벽 4시까지 이어졌다. 물이라 불리는 대통령 시절, 그리고 그 후, 술집 12시 영업제한 조치가 있던 시절에는 어찌 살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감자탕집만은 12시 이후에도 영업을 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토요일 오후 늦게 일어났다.
누군가 물었다.
“요즘엔 몇 시에 일어나세요?”
“눈 뜰 때 일어나요.”
요즘엔 알람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눈이 떠질 때 일어난다. 내가 일어나고 싶은 시간이 기상시간이다. 토요일도 그 날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의 여파로 오후에 일어났다.
토요일 저녁 집에서 일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그러다가 일요일 새벽 5시에 잠이 들었다. 4시를 넘길 즈음,
‘어짜피 지금 자면 아침에 못 일어날텐데...’ 걱정은 되었지만 내 몸은 새벽5시를 넘기지는 못하였다.
도선사 주차장 근처에서 잔치국수를 하나 먹고 오르기 시작한다.
북한산은 단풍이 아름다운 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보기에 나쁘지는 않다.
계절이 깊어가는 하늘엔 가을로 가득했다.
떨어지는 낙엽을 맞으며 오른다.
야영장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내년 남미 등반을 준비하는 명선, 미선, 명희 팀이다.
“어디 등반하고 오냐?”
“등반은 무슨 등반. 지금 올라오는 거야.”^^;;
“인수봉에 사람 무지 많더라.”
“나는 일요일에 인수봉은 일 년에 두 번밖에 안가. 봄 정규반때하고 가을 정규반때. 그 외엔 일요일에 별로 가고 싶지 않아. 우리 학교 팀이 요 근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찾으러 가볼게.”
몇 마디를 나누고 헤어져 우리 캠프지를 찾으러 막 내려가니 바로 밑에 형들이 계신다.
동준이형과 창선이형은 누워계시고 도영이형, 승구형, 용엽이형이 계신다. 나를 기다리다 지쳐 시체가 되셨다고 한다. 면목이 없다. 도영이형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던 중,
“그런데 소주는 안사왔냐?”
대낮에 올라오면서 소주를 사올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설마 지금까지...... 보아하니 어제 남았던 술이 다 바닥난 듯하다.
등반을 갔던 기원이가 나타났다. 숨은벽 등반을 하고 부대로 복귀해야 해서 먼저 빨리 내려왔다고 한다. 좋은 군대다. 그리고 그나마 기특하다. 숨은벽 팀이 돌아오고 인수봉을 갔던 팀들이 석재형부터 순서대로 내려온다.
늦은 식사를 하고 창선이형을 중심으로 하산을 했다. 내 배낭이 가벼워 바꿔 메겠다고 말씀드렸지만 몸이 정상이 아닌 상황에서도 산악인의 자존심인 배낭을 후배에게 넘기지는 않으신다.
자리는 우리콩집으로 이어져 막걸리 한 순배 돌았다.
한 잔쯤 들이켰을 즈음, 혁중이, 용준이를 제외한 1학년들이 학교로 가겠다고 한다. 도영이형께서 남은 재학생도 모두 함께 가라고 하셔서 모든 재학생이 자리를 빠져나갔다.
일찍 가겠다는 재학생은 가고 술자리에 남겠다는 녀석은 남는 게 맞는 건지, 성대산악부 재학생은 함께 움직이는 것이 맞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저녁 자리도 파하고 창선이형께서 ‘단체행동’을 하자고 주장하셨으나 다수의 형들이 일찍 귀가를 원하셔서 자리는 파했다. 일산행 차량 2대... 성대산악부 일산지부의 위력은 계속된다.
석재형이 남미 갔다가 돌아오면 언제 한 번 같이 창선이형을 찾아뵈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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