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7-09 14:27
문화이야기 : 불상과 석등!
 글쓴이 : 오성대감
조회 : 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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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불교가 퍼지기 시작하던 고대 불교는 불상이 없었다. 석가모니는

인도의 기존종교인 브라만
교의 형식주의적인 제사 위주의 의식을 싫어했

기 때문에“내가 죽거든 나를 개인적으로 따르지 마
라. 나는 길을 안내

하는 스승일 뿐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래서 초기 불교에서는 불상

을 모시
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점차 흘러감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 속

에서 부처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수
행의 강도가 약해지면서 무엇인가 신

앙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보리수
나무를 조

각한다든지 부처가 앉았던 자리나 부처의 발자국을 조각하여 간접적인

숭배의 대상을 찾
기도 했다. BC 522년 석가모니의 열반 후 불상이 최초

로 나타나는 AD 1세기까지 600여년 간은 불상
이 없는 무불시대였다.

 

AD 2세기 알렉산더대왕이 서역으로 진출하면서 지금의 아프가니탄지역에

서 교류되던 헬레니즘의 영
향을 받아 처음으로 불상이 생기는데 그 특징

은 바로 서양인 그리이스인의 얼굴을 닮고 옷은 양어
깨를 덮는 형태이

다. 그 이유는 아프가니스탄지역이 추운 지역이었기 때문이고, 이 때의

불상을 간
다라불상이라 부른다. 약 50년 후에 나타나는 부처님의 의상은

인도 중부의 따뜻한 지역의 영향
로 한쪽 어깨가 노출되는 형태이고 인도

인의 얼굴형태이다. 이 때의 불상을 인도 중부지역 이름인
미투라불상이

라 부른다.

 

우리나라에 철로 된 철불이 있다. 철불이 만들어 지던 시대는 고려 초기

이다. 사병을 많이 거느렸
던 개국공신들의 힘을 약하게 하기 위하여 무

기에 쓰이던 철을 국가에서 징발하여 철불을 만들었기
때문이고, 그 시

기를 제외하면 철불을 만든 시기는 별로 없다.

 

 

 

 

탑은 부처의 무덤이다.

세계사 배울 때 이름을 많이 들어본 아소카대왕이 전쟁을 통해 인도의

수많은 군소왕국을 최초로
통일했다. 정복전쟁을 통해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고, 왕권다툼으로 인해 형제들까지 잔인하게 죽
였던 아소카대왕은

불교에 귀의하여 속죄를 하고자 했다. AD 313년 밀라노칙령으로 콘스탄

틴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듯이 아소카대왕도 불교를 국교처럼 불교의 포

교에 앞장을 섰고, 그가 선택한 방법
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담은 탑을 세

계 도처에 세우는 것이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아소카 대왕
이 세운

탑이 8만4천개이었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부처의 사리를 “스투파”라고 하는 건축구조물에 넣었다.

이 스투파는 마치 우리나라
의 무덤의 봉분과 매우 흡사하다. 스투파는

부처의 무덤인 셈이다. 이 스투파가 중국으로 전해지면
서 중국에서는 위

대하신 분을 그냥 무덤에만 모실 수가 없다고 하여 높은 전각을 만든 다

음 그 위
에 봉분형태의 조그만 구조물을 만들어 그 안에 부처의 사리를

모셨다. 그리고 스투파를 한자로 표
시하여 탑파라고 불렀다. 이 형태가

중국 탑의 시초이다. 

이 탑파가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탑이라고 불리워지게 된다. 탑은 영어

로 타워가 아닌 파고다
다. 종로2가에 있는 탑골공원을 파고다공원이라고

부르기도 한 기억이 난다. 파고다는 원래
중국,일본, 동남아시아에서 탑파

나 탑 모양으로 높이 지은 불교 사원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의 탑 모양은 높은 전각에 신경을 쓰다 보니 실제 그 위에 존재하던

무덤의 존재는 잊혀지고
여러 층의 구조물만 남게 되었다. 그래도 탑을

잘 살펴보면 맨 위에 무덤처럼 생긴 조그만 구조물
이 있다. 그것을 복발

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이 바로 부처의 무덤이다. 그럼 사리가 그 복발 속

에 있
을까?  아니다. 진신사리는 그 어느것 보다도 소중한 보물이기 때

문에 조그만 복발 속에 넣어두면
도난당할 위험이 많아 돌로 만든 탑의

깊숙한 곳에 사리를 넣어 둔다.

 

 

 

처음의 목탑은 석탑으로 바뀌고 고려시를 지나면서 크기도 점점 작아진

다. 규모가 큰 탑은 오래된
탑이라고 여기면 맞다. 백제의 미륵사지 석

탑이나 분황사 석탑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벽돌형태의
돌을 쌓은 전탑으

로 크기가 크다. 유일하게 남은 큰 목탑이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이다.

몽고군에
의해 불타없어진 황룡사목탑도 그 주춧돌로 미루어 보면 엄청

나게 큰 목탑이었다. 책에 전해지듯이
신라의 기술로 못 만들어 백제의

장인을 모셔와서 만들었다는 그 탑! 너무 아쉽다.

 

사찰에서 흔히 쉽게 지나치는 것이 석등이다. 석등은 단순한 장식적인

구조물이 아닌 엄청난 뜻이
있는 석물이다.

석등의 형태는 땅에 붙어 있는 기반석 위에 연꽃이 덮고 있으며, 8각형

의 기둥이 있고 그 위에 하
늘로 향한 연꽃이 새겨져 있고, 연꽃위에 불

을 밝히
는 화사석과 창문4개가 새겨져 있으며, 맨 위에 덮개와 장식이 올라간다.

 

불가에서는 무지의 세계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일반중생들이 부처와


깨달음의 세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진리의 등불이다.  그런데 왜 화창

은 항상 4개일까? 그것은 불교에서 보는 진리는 4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를
사성제(四聖諦) 또는 사제(四聖諦)라고 부른다. 즉 진리가 4개이므로

불빛이 4개인 것이다.

 

 

사성제는 고집멸도이다. 인생의 참모습은 괴로움이라는 고제(苦諦), 괴

로움은 집착으로부터 나온다
는 집제(集諦), 해탈을 위해서는 집착을 완

전하게 없애
는 끊임없는 수도를 해야한다는 도제(道諦)의 네가지 진리이

다. 끊임없는 수도를 통해 집착을 없애
면 괴로움이 없어진다는 진리이다. 

 

 

 

 

 

 

 

 

 

 

 

 

 

 

 

그럼 8각형기둥은 무슨 뜻일까?

8각기둥은 수도를 위한 방법으로 8정도(八正道)를 나타내고 있다. 고통

을 소멸하는 참된 진리인 8
가지 덕목은 올바로 보는 정견(正見),올바로

생각하는 정사(正思:正思惟), 올바로 말하는 정어(正
語), 올바로 행동하

는 정업(正業), 올바로 목숨을 유지하는 정명(正命),올바로 부지런히 노

력하는
정근(正勤:正精進), 올바로 기억하고 생각하는 정념(正念),올바

로 마음을 안정하는 정정(正定)이
다.

 

시간나면 다시 불국사를 갈 예정이다. 어릴 때 아무 생각없이 보던 불국

사와 지금 보는 불국사
는 분명하게 틀리다. 지금부터 무척 설레인다. 갔

다온 후 불국사에 대해 다시 글을 올릴 예정
이다. 예를 들어 “극락전의
계단은 48계단이다. 바로 아미타여래가 48가지 서원을 했다는 그 내용
을

형상화 한 계단이다”라든가, 모형을 보겠지만 석굴암에 깃들어 있는 이

야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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