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6-22 12:28
조선 왕릉이야기(1) ~ 조선왕릉이 왜 유네스코 문화유산인지?
 글쓴이 : 오성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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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이 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는지?

이유는 600년 왕조의 왕릉이 훼손되지 않고 현재까지 전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적으로 한 왕조의 왕릉이 전부 고스란히 남아있는 유일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왕조의 왕릉은 몇 개일까요? 정답은 42개입니다 그 중 개성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원비인 신의왕후 한씨의 능인 제릉과 제2대 정종과 정종비 정안왕후 김씨의 능인 후릉인 2개를 제외한 40개의 왕릉이 대한민국에 있습니다. 어? 조선시대 왕은 연산군과 광해군을 제외하면 25명인데 왕릉은 40개? 그 이유는 추존 왕이 있고 왕과 왕비의 능이 따로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영조임금은 계비 정순왕후와 동구릉에 모시고 정비인 정성왕후 서씨는 서오릉에 따로 있는 경우입니다.

 

추존 왕이란 무슨 말일까요?

추존 왕이란 살아 있을 때 왕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죽은 뒤에 왕의 칭호를 받은 분을 말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의 추존왕은 모두 9명이지만 태조 이성계의 4대 선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를 제외하면 왕세자의 신분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덕종, 진종 ,장조 ,익종이 있어요. 그리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의 아버지 원종이 있어요. 왕으로 추존된 이들은 종묘에 신위가 모셔져서 살아 있을 때 왕위에 오른 왕과 똑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추존왕은 생기게 된 이유는 왕위를 이어받는데 있어서, 정통성을 인정받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왕조는 예법을 중시한 유교이념을 바탕으로 세워진 나라이며, 왕위계승에 있어서 왕의 아들만이 왕이 될 수 있다는 “적장자원칙”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즉, 서자가 아닌 적자로써 장남이 다음 왕위를 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세자가 일찍 죽었을 경우에 그의 아들인 세손이 왕위를 물려받아야 되는데, 그러면 할아버지에서 손자로 한 대를 건너뛰어 왕위를 계승하게 되면 이것은 왕의 아들만이 왕이 될 수 있다는 종가 혈통의 이념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했더라도, 세자였던 아버지를 추존 왕으로 만들면 적장자원칙에 적합한 모양새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추존 왕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은 “태정태세문단세.........”하면서 자라났기에 암기의 기본은 28개로써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습니다. ㅋㅋㅋ. 추존왕은 위 암기 내용에 없지만 종묘에 모셔지고 왕릉이 된 것입니다.

 

추존왕 다섯 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추존되는 과정이 바로 역사공부이기 때문입니다.

9대 임금 성종의 아버지 덕종은 세조의 맏아들로서 의경세자로 봉해졌지만 병약했던 20세의 나이로 죽고 그 후 세조의 차남인 예종마저 1년 남짓한 재위 기간만을 채운 뒤 병사하였어요.

야사에 따르면 세조의 꿈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권씨가 나타나󰡒네가 죄 없는 내 자식을 죽였으니 나도 네 자식을 죽이겠다.󰡓고 한 후 세조의 자식들이 20세를 넘기지 못했다는 말이 있지만 연대가 맞지 않는 야사일 뿐입니다. 여하간 예종까지 죽자 세조의 손자인 자을산군을 왕위에 올렸고 바로 그가 성종입니다. 적장자 원칙에 어긋나는 경우가 되어서 성종이 왕위에 오른 뒤 성종의 아버지인 의경세자를 덕종으로 추존합니다. 이 내용은 어느 방송의 사극 ‘인수대비’dp 자세하게 나오기도 했습니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은 선조와 후궁 인빈 김씨 사이에서 난 선조의 다섯째 아들이며. 살아 있을 때 정원군에 책봉되었으나 죽은 지 4년 후에 아들인 능양군이 반정세력에 추대를 받아 16대 왕 인조로 즉위하자 정원대원군으로 추존되었어요. 왜냐하면 정원군은 살아있을 때 세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들이 왕이 되자 대원군으로 추존됐습니다. 하지만 인조의 선왕인 광해군이 폐위되어 왕으로 인정받지 못하자 선조-정원대원군-인조에 이르는 정통성 확보를 위해 인조 즉위 10년 만에 정원대원군을 원종으로 추존했습니다.

 

  진종은 영조의 맏아들로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0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효장세자로 봉해졌고, 그 후 이복동생인 사도세자가 왕세자가 되었으나 뒤주에 갇혀 죽고, 영조는 죄인의 아들을 세손으로 세울 수 없게 되자 후에 정조가 되는 손자를 죽은 효장세자의 양아들로 입적시킨 뒤 세손으로 책봉하여 큰 아버지의 양아들이 된 정조는 임금에 즉위하자 효장세자를 진종으로 추존합니다.

 

장조는 뒤주 속에 갇혀 죽은 영조의 차남이자 정조의 생부인 사도세자입니다.

익종은 순조와 안동 김씨 김조순의 딸 순원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으로 순조가 죽고 나서 순조의 손자 헌종이 8살에 즉위하면서 헌종의 아버지 효명세자는 익종으로 추존됩니다.

 

추존왕릉의 큰 특징은 병권을 상징하는 석물인 무석인이 없습니다. 즉, 살아서 병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왕릉 40개의 위치는 동구릉, 서오릉. 서삼릉, 파주삼릉에 20개가 있고 멀리 영월의 장릉(裝陵:단종),김포 장릉(章陵:제 16대 인조의 부모로 왕으로 추존된 원종元宗), 파주 장릉(조선 제16대  왕인 인조와 인렬왕후 한씨), 여주의 영영릉(세종대와과 효종),정릉,태강릉등 모두 40개입니다. 참고로 동대문에서 상여가 출발하면 동○릉, 서대문에서 출발하면 서○릉이라 불렀습니다. 왜, 동쪽에 왕릉을 쓰다가 갑자기 서쪽으로 왕릉을 많 이 바뀌었는지는 “풍수”에서 자세하게 설명드립니다. 간단하게 설명드리면 “풍수에 밝았던 세조”가 동구 릉으로 흐르던 왕기를 차단하기 위해 자신의 묘를 광릉 위치로 정해서 동구릉으로 흐르던 왕기를 중간에서 변경하여 서오릉 쪽으로 왕기가 흐르게 하여 자신의 직계 후손들에게 좋도록 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다음 회는 왕릉의 구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